위대한 거장이란 무엇일까? 독일의 저명한 소설가 헤르만 헤세는 그의 노벨상 수상작인 '유리알 유희'에서 '거장이란 인생을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올곧게 살아낸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시대에 그 거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스크린을 통해 만났다. 비록 스크린에 등장해야할 이는 세상에 없어서, 유작으로, 추모의 기림이 남겨진 작품이 되었으나. 그 위대함이 그의 제자들을 통해서, 함께했던 작품들로 고스란히 기록되어 남았다.

그 무대위에서의 춤에 대한 기록을, 또 다른 거장 - 다른 분야에서의, 빔 벤더스는 빼어난 영상미와 구도, 편집으로 완성해서 보여준다.

그러한 예술 영화이니만큼, 친절하지도 보기 편한 것도 역시 아님을 감안해야 한다. 감독의 역량이 빼어난만큼 영화는 한 공연을 재연해내서 영화화하는 작업만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피나 바우쉬'는 무용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으며, 무용이란 표현도구를 어떻게 적절하게 사용했는가? 그녀의 무용 작품들, 그리고 그녀와 함께한 무용수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그것을 알아낼 수 있을까? 빔 벤더스 감독이 다큐멘터리로 시작한 감독이니만큼, 영화는 매우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피나의 작품들, 무용극들은 '봄의 제전', '카페 뮐러', '콘탁트호프', '보름달'이 순서대로 무대위에서 공연으로 보여지는데, 여기에서 빔 벤더스 감독은 매우 독특한 방식을 사용한다. 마치 액자의 틀처럼, 관객들이 앉아서 보고 있는 실루엣이 함께 나오는 것이다. 이는 피나의 작품들을 순수하게 무대에서 보여지기를 원했던 의도를 존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마치 객석에 앉아 공연을 보는 느낌이 매우 생생하다. 그것도 3D로 만들어져서 더더욱 입체감이 살아난다.(물론 공연물로 분류되어 2만원의 가격에 상영관도 잘 없는, 그럴 필요까지 있었을까 의구심이 들지만 말이다.)

 

 

하지만, 역시 필름의 시인이라 불리우는 빔 벤더스 감독답게 영상의 아름다움과 섬세함은 너무도 치밀하다. 봄의 제전에서는 직접 무대에 서 있는 것처럼 가까이에서 들여다 볼 수 있으며, 땀과 물로 젖어드는 무용수들의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이다.

그것이 이제 영화로 만들어지자 시공간을 건너 뛰어서 무대밖에서까지 펼쳐진다. 무대위에 흙을 깔고(봄의 제전), 비가 내리고 물이 찰랑대는(보름달) 자연석까지 배치했던, 자연에 대한 교감을 중요시했던, 피나의 뜻이 이제 제대로 이뤄진 것이 아닐까 싶다.

몽타주기법으로 무대위의 공연 장면 사이사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무용수들의 코멘트, 또는 침묵과 함께. 수영장, 부퍼탈시의 상징인 공중에 매달린 지하철 슈베베반, 강과 계곡, 도심의 곳곳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춤은, '춤을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했던 피나의 말을 잘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의 외로움, 고통, 애정등을 쓰러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은 강하다고 말하면서 고통앞에 맞서 싸우고 있는 모습들은. 피나가 한평생 춤을 통해서 표현하고 싶었던, 자신의 내면이 아닐까?

부퍼탈 탄테디어터 단원들의 증언을 통해, 조금씩 그녀에 대해 재구성을 해보면. 결국 그녀도 거장이기 이전에 춤추는 것밖에 몰랐던, 두려움과 외로움에 맞서 당면해야만 하는 연약한 인간이었다. 글을 쓰는 이는 글로, 영화는 필름으로, 그림은 붓과 물감으로 그들만의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하듯. 어려워 보이는 것은, 그 메시지가 무엇일까? 어렵게 생각하기 때문이지, 문제는 단순하다.

흙을 뒤집어 쓰는 한 여인과 흙을 퍼붓는 여인, 그 뒤를 나무를 짊어지고 걷고 있는 여인, 서로를 지고 걷는 남녀, 모두가 첫 장면과 끝장면으로 이어지는. 봄,여름,가을,겨울처럼, 자연과 시간속에서 견디고 나아가고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까페 뮐러에서 껴안고 있는 남과 여, 그것을 조종하려드는 한 남성의 모습은 시간과 운명이 아닐까? 우리는 자의만으로는 계속해서 서 있을 수 없는 불안한 인간인 것이다. 나뭇가지를 얹고 걸어가는 한 단원의 춤처럼, 의자를 쌓고 그 사이를 통과하려 하는 남녀의 모습, 눈을 감고 걸어가는 여성의 앞에 놓인 의자를 황급히 치우려 노력하는 한 남성의 모습처럼 말이다.

그녀의 무대라는 하나의 캔버스는, 마치 피나 바우쉬라는 거대한 붓이 색색의 물감같은 무용수들의 개성을 통해서 그려내는 그림같아 보인다. 그 무용수들은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연령대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인터뷰 역시 다양한 그네들의 모국어를 그대로 사용한다.(그래서 한국인 무용수 김나영씨의 인터뷰에서는 자막이 나오지 않는다) 피나 바우쉬가 얼마나 그러한 개성, 자연적인 개성을 그대로 사용했는가는 '콘탁트호프'에서 잘 드러난다. 한 사람씩 나와서 얼굴을 드러내고, 똑같은 표정을 지어보인다. 무용수는 나이도 늙고 젊고 배가 나오고 키가 작고 크고... 제각각이다. 반복되는 동작들은 통일성과 기하학적인 구성은 있지만 매우 혼란스럽게 뒤섞인다. 도시와 자연이 섞여있는 우리의 삶이 언제나 추구하는 것에서 자유스럽지 못하고, 애정을 갈망하며, 안정을 추구하는 것과 같은 것일까?

그녀의 무용극을 이렇게 빔 벤더스 감독의 지극히 아름다운 재구성을 통해서 들여다 보았다. 어떤이는 실제로 무용극을 보고 싶다고도 했고, 나는 부퍼탈에 한 번 가보고 싶어졌다.

비록 춤을 추던 이들은 그 자리에 계속되지는 못하겠지만, 피나 바우쉬가 추구했던 춤의 영역은 그의 제자들과 이 필름을 통해서 항상 우리곁에 있고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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