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유효한 인디의 감성으로 음악의 지형을 그리다

 

척박한 음악 시장에서 록밴드로 살아남는 것만큼이나 고단한 일이 또 있을까. 17년 동안이나 꿈과 현실의 괴리를 묵묵히 음악으로 메워온 생존자들은 그 자체로 기적이고 안식이다. 어두운 터널 속으로 정처 없이 날아가 버린 줄 알았던 3호선의 나비는 언제나 그랬듯 우리 품으로 다가와 사뿐한 날갯짓을 건넬 것이다. 새 봄, 나비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Back to the 90’s

1990년대 중반, 홍대 클럽씬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인디밴드들이 대거 등장했다. 인디펜던스(Independence), 말 그대로 산업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고 독립적으로 자신만의 음악을 펼치는 인디밴드들은 새로운 문화 현상으로 각광받았고, X세대의 표본으로까지 발돋움했다. 인디 1세대들은 그동안 주춤했던 밴드문화를 부흥시키는 등, 특유의 저돌성으로 대중음악계에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 당시 활약했던 크라잉 넛, 노브레인, 자우림 등은 지금까지도 여전한 인기를 누리며 인디 출신의 저력을 보여줬고,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3호선 버터플라이 역시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다. 3호선 버터플라이는 확실히 남달랐다. 99년 결성 당시 허클베리핀의 남상아(보컬), 99의 성기완(기타), 삐삐밴드의 박현준이라는 화려한 라인업으로 화제를 모았으니까. 수퍼밴드로 주목 받았던 만큼 음악적인 스펙트럼도 상당히 넓었다. 얼터너티브, 노이즈 팝이라는 90년대 사운드에 실험성을 덧칠하면서 자신들만의 개성을 확립했는데, 특히 남상아의 오묘한 카리스마와 에너지는 밴드의 색깔을 완성했던 결정적 한방이었다.

(남상아) “우리의 색깔은 색깔을 규정하지 않는 거예요. 굳이 선택하자면 유리구슬 속의 마블 같은 색이라고 할까요?”  

유리구슬의 마블처럼 다채로운 색깔을 지닌 3호선 버터플라이는 2002년 2집 <Oh! Silence> 발표 직후에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의 OST를 담당하면서 대중적인 색채까지 얻었고, 드라마 주제곡이자 데뷔 앨범 수록곡인 <꿈꾸는 나비>까지 덩달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이들은 대중성에 안주하기 보다는 자유를 선택했다. 2003년에 내놓은 3집 <Time Table>은 그야말로 휘황찬란한 실험의 대향연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하길 꺼려하는 3호선의 보헤미안들은 3집 활동 후 기약 없는 휴식기에 들어간다. 이후 6년 뒤인 2009년에 미니 앨범 <Nine Days Or A Million>을 발표했지만 기대했던 것만큼의 성과는 없었다. 그들도 그렇게 잊혀지는 듯 했다.

 

 

아직 할 얘기가 많아요. 꿈에서조차... Dreamtalk

3호선 버터플라이의 이름이 다시 대중음악계 전면으로 부상한 사건은 2013년 초에 일어났다. 2012년 말에 내놓은 4집 <Dreamtalk>로 제10회 한국대중음악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반상’, ‘최우수 모던록 음반상’, ‘최우수 모던록 노래상’을 수상하며 무려 3관왕을 차지한 것. 더욱이 시상식의 백미이자 대상에 해당하는 ‘올해의 음반상’ 수상은 밴드에게 더없이 뜻 깊은 훈장이었다.

(김남윤) “솔직히 한 개 정도는 생각했지만 세 개까지는 예상 못했어요. 그래서 두 개를 받은 후에 별 생각 없이 넋 놓고 있었는데, 올해의 음반상 부문에서 우리를 호명하는 거예요. 심지어 다른 멤버들은 자리를 비운 상태여서 멘붕에 빠졌죠. 부랴부랴 멤버들을 챙겨서 무대에 올라가긴 했는데, 수상 소감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얼떨떨했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아쉽게도 리더 성기완은 부친상으로 함께 자리할 수 없었다고 한다.

(서현정)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장례식장으로 가서 영정 앞에 트로피를 놓고 절을 올렸어요. 기완 오빠도 내색은 안했지만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4집 타이틀 곡 제목이 <헤어지는 날 바로 오늘>이잖아요. 그래서 노래 제목 때문에 기완 오빠가 어머님께 핀잔을 듣기도 했죠.”

역작 <Dreamtalk>는 밴드에게 여러모로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일단 3집부터 합류한 베이시스트이자 사운드 디자이너 김남윤이 실험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사운드 이펙팅으로 음반의 격을 높였고, 밴드의 막내로 이번 앨범부터 가세한 드러머 서현정은 팀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의욕적인 새 출발을 하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이었던 셈이다.

(성기완) “남윤이가 엔지니어 역할을 해준 덕분에 편한 마음으로 작업에 임할 수 있었어요. 앉은 자리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가 곧바로 음악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했죠. 이 앨범은 멤버 간의 원활한 소통으로 빚어낸 산물입니다. 수많은 토론과 즉흥적인 아이디어가 광범위하게 반영된, 리얼한 현장성을 지니고 있죠.”

(김남윤) “사실 저는 이 앨범을 정통 사운드로 담고 싶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기완이 형이 더 새로운 걸 시도해보자고 재촉하더군요.”

<Dreamtalk>는 대중성과 실험성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하는 작품이다. 애절한 발라드 <헤어지는 날 바로 오늘>, 제목처럼 재기발랄하고 섹시한 <니가 더 섹시해 괜찮아>, 묵직한 여운은 안겨주는 <향>, 멕시코 음악을 번안한 <쿠쿠루쿠쿠 비둘기> 등은 충분히 대중적이다. 반면, 노이지한 사운드와 반복적인 가사가 인상적인 <스모우크핫커피리필>, 마치 지독한 악몽을 꾸는 듯한 느낌의 <꿈속으로>, 프로그레시브적인 접근을 보이는 <Hello> 등은 실험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데, 특히 <제주바람 20110807> 이란 트랙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8분여의 러닝 타임동안 바람과 파도소리, 기타 노이즈만이 계속되는 완벽한 구상음악(具象音樂)이기 때문이다.

(김남윤) “<제주바람 20110807>은 삐딱한 곡을 넣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겁니다. 현대인들의 속도지상주의에 반하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일상의 음향을 가지고 시를 썼다고 할 수 있죠.”

(성기완) “물론 이 곡을 그냥 넘겨버리는 분들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노래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앨범은 싱글과는 다르게 하나의 커다란 지도를 그리고 지형을 짜는 작업입니다. 시골에 가면 숲속 깊은 곳에 우물이 있게 마련이잖아요. 앨범이 숲이라면 이 곡은 아주 은밀한 우물입니다.”

팀의 맏형이자 리더인 성기완은 시인으로도 꽤 유명하다. 그래서 때로 그의 가사에는 난해함과 모호함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남상아) “가사를 꼭 머리로 이해해야 한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저는 그냥 노래 자체에 충실할 뿐이에요.”

(성기완) “음악의 경우에 가사는 고정된 물체가 아닙니다. 꿈틀꿈틀 대는 생명체죠. 가사는 이해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Dreamtalk>의 성공으로 3호선 버터플라이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모습은 2014년 5월에 있었던 앨범의 LP 버전 발매였다. 이 프로젝트는 팬들의 투자를 받아서 앨범을 제작하는 이른바,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형식으로 진행됐다. 멤버들은 팬들의 변함없는 관심과 지지에 보답하기 위해서 앨범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고, 체코에서 두 번의 마스터링을 거쳐 제작된 양질의 LP를 선사했다. 또 팬들과 함께 하는 음악 감상회를 기획해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김남윤) “LP 발매가 다분히 복고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음악에 접근하는 것이 오히려 더 21세기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LP를 통해 새로운 관계를 창출해 보자는 취지였던 거죠.”

 

현재를 버텨내는 현재진행형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멤버 구성은 마블색 만큼이나 다채롭다. 60년대 생부터 80년대 생까지. 이 정도면 세대 차이를 느낄 법도 한데.

(서현정) “저는 LP를 음악 감상회 때 처음 만져봤어요. 그런데 우리 중에서 트렌드에 제일 민감한 멤버는 가장 연로하신 기완오빠예요. 우리는 각각의 차이를 개성으로 받아들일 뿐이지, 나이로 나누거나 편견을 갖지 않습니다. 나이의 자유를 인정한 거죠 하하.”

자유로운 소통과 교류, 무제한의 상상력으로 여기까지 달려온 이들은 벌써 17년차의 내공을 자랑한다. 이 땅에서 인디 밴드로 17년을 버텨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어느 정도의 책임감도 생겼을 터.

(성기완) “책임감 없는 사람들이 하는 게 음악입니다. 책임감으로 음악할 수는 없죠. 우리처럼 음악해도 굶어죽지 않는다는 걸 후배들에게 증명해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3호선의 나이가 열일곱이 됐지만 옛 날 밴드로 남기보다는 여전히 새 노래가 기대되는 현재진행형의 밴드가 되고 싶습니다.”

이들은 ‘앉은 자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곳에서 음악적인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어디 근사한 곳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자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왁자지껄한 술자리에서 떠오르는 단상들이 음악의 힌트가 된다는 것. 그만큼 현재, 지금 이 순간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뜻일 거다. 성기완에게 앨범 계획에 대해 물었다.

(성기완) “새 앨범 계획은 글쎄요... 있는데 없고 없는데 있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한 두 곡 만들 수도 있지만 구체적인 건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남상아) “바로 앞에 닥치는 것에 신중하다보니 미래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죠. 하지만 확실한 건 최대한 빨리 새 앨범 작업에 들어가는 것이 저희 목표라는 사실입니다. 그냥 현재를 치열하게 살고, 앉은 자리에서 충실하다 보면 곧 좋은 앨범으로 여러분을 찾아뵙게 될 거예요. 헤어지는 날이 바로 오늘이라면, 내일은 우리가 또 다시 만나는 날이 될 테니까요.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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