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방향 균형의 정책 중시하는 원탁의 교육감

 

‘교복 입은 시민’ 지키는 희망교육의 파수꾼 될 터

 

근황은 어떠신지요.

취임 후 지금까지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소통을 위해 교육주체들을 많이 만나고 현장의 의견을 듣고 있습니다. 특히 12번에 걸친 원탁토의에서 1200여명의 부모님들을 만나서 얘기를 들었는데, 교육의 주체이면서도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었던 학부모 목소리를 이끌어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서울시 교육감과 서울의 교육정책이 과연 전 국민의 관심의 중심에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다양한 집단의 이해를 절충하고 적절히 반영하는 일은 매우 신중함을 요하는 것 같습니다.

 

▲ 조희연 교육감이 학부모들과 원탁토의를 하고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교육감님의 각오도 남다를 것 같습니다.

저는 정책을 펴는데 있어서 소통과 방향,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집무실에 소통과 방향성, 균형을 의미하는 원탁, 나침반, 자전거를 두고 있지요. 특히 자전거는 교육과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매일매일 생활이 즐겁고 희망이 넘칠 수 있도록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살피겠습니다. 학교를 다니든, 학교 바깥의 사회에 있든,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안전한 사회가 되도록, 그리고 배움의 기쁨을 놓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욕심 부리지 않고 작은 것부터 내실 있게 추진하겠습니다.

 

지난 8개월여의 활동을 자체 평가하신다면.

작년은 장기적인 교육의 변화와 혁신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시기였습니다. 정책을 잘 구현할 수 있도록 조직 개편을 통해 진용을 짜고, 자치단체나 시민사회와의 협력체제 등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새로운 서울교육을 선보이기 위한 단계로 나가고 있습니다.

 

▲ 장충중학교에서 교복을 입고 '희연샘의 체험'을 하고 있는 조희연 교육감

2015년의 목표는 무엇이고, 진행 상황이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교복을 입은 시민’ 프로젝트라고 명명한 학생 자치를 활성화하는 정책입니다. 학생들을 훈육과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 결정권을 가진 ‘교복 입은 시민’으로 대우하자는 취지이지요. 자기결정 능력이 높은 아이일수록 삶의 태도가 긍정적이고 행복감을 많이 느낀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혹은 사랑과 염려가 앞선 나머지 아이들의 결정을 기다려주기 보다 부모님이나 선생님들께서 먼저 결정해 버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동안 우리교육에서는 자기결정 능력을 키우는 일을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많은 아이들이 ‘결정 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저는 자기결정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과제로 재설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야말로 아이들에게 이런 능력을 길러주기에 가장 적합한 현장입니다. 학교는 충분한 교육시간, 교사라는 전문가의 도움, 참여와 협력을 실천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모두 갖추고 있는데다, 아이들의 불균질성과 역량 차이를 보정하고 줄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학급자치활동 시간을 월 2회 이상 확보하고, 학교의 의사결정 과정에 학생들이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특히 학생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사항을 심의할 경우 학교운영위원회에 참관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학생 참여 예산제’를 도입해서 예산집행까지 해 볼 수 있는 실질적인 자치도 지원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치활동 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는 세대인 선생님들께서 학생자치를 잘 지도할 수 있도록 연수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얼마 전 ‘9시 등교를 할 것이냐’에 대해 모든 학교에서 토론을 했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의견을 50% 이상 반영해서 등교시간을 결정하도록 했지요. 학생들이 모두 토론에 참여하고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한 표를 행사해서 결정에 참여한 순간 이미 학교의 주인이 된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이 학생들에게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학생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려고 합니다. 또 하나 역점을 두는 것은 열린 세계시민교육입니다. 아이들을 ‘어떤 영혼을 지닌 인간으로 키우는가’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배려와 존중의 이타적 품성, 약자의 편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정의로운 인간, 거기에 더해 세계화 시대에 국가, 민족, 문화, 지역, 종교 등 다양한 배경을 지난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편협한 차별의 시각이 아니라 수평적 공존의 시각과 태도를 갖는 인간으로 키우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교육청에 민주시민교육과와 열린세계시민교육, 다문화 교육을 전담할 부서를 만들고 수업자료나 웹자료를 만들어 보급할 것입니다.

 

혁신학교, 혁신교육 등 혁신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교육감님이 생각하시는 혁신은 무엇인지요.

학생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교육 대신 아이 한 명 한 명이 저마다 소중한 존재로 성장하게 도와서 아이가 지닌 무한한 잠재력을 꽃피울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이런 교육을 실현시켜 보자는 뜻으로 ‘모두가 행복한 혁신미래교육’을 서울교육 방향으로 설정했습니다. 혁신미래교육이란 곧 살림의 교육입니다. 낡은 교육은 ‘따라잡기 교육’(추격교육)이었습니다. 60년대~80년대까지 한국이 발전도상국이던 시절에는, 이른바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무조건 더 많이 외우고 더 빨리 베껴야 했습니다. ‘따라잡기 교육’은 서구의 앞선 지식을 무조건 더 빨리 더 많이 학습하여 서구를 따라잡는 교육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의 자리에 올라섰습니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창의적 교육의 길을 개척해 가야 합니다. 현실이 이렇게 변했는데, 교육은 아직도 ‘따라잡기 교육’에 머물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직도 더 많이 외우고, 더 빨리 베끼라는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직도 성적과 등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직도 무한경쟁 속에서 자기만 살아남아야 한다는 가치관을 교육받고 있습니다. 60~80년대식 교육이 아직도 21세기 아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에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청소년 가출률과 자살률이 OECD 국가 최고 수준인 데는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희망의 교육이란 어떤 것입니까? 아이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역량과, 협동하여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는 교육이 바로 희망의 교육입니다. 외우고 베끼라고 강요하는 대신 아이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깨닫도록 도와주는 교육, 성적과 등수로 평가하는 대신 과정을 중시하는 교육, 국영수도 중요하지만 그것 말고도 아이들이 창의력과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는 교육, 아이들을 무한경쟁에 맡기는 대신 함께 사는 삶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교육이 바로 희망의 교육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길러내어야, 자존감과 협동심, 창의력과 진정한 실력을 갖춘 21세기의 세계시민으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교육은 학생․교사․학부모․시민이 함께 주체로 나서는 교육이어야 합니다. 단순히 교육의 ‘대상’이 되거나, 교육의 방관자로 남지 말고, 모두가 교육의 주체로 참여하고 또 스스로의 주체성을 키우는 교육이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교육열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과거 압축성장 시기에는 한 사람이 잘 되면 온 집안이 번성하고,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구조가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한 집안에서도 장남에게 모든 것을 지원하는 일이 많았지요. 공부를 잘하면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공부가 희망 사다리가 되었고, 이를 위해 가혹한 경쟁도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경쟁과 교육열이 우리나라를 단시간에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경쟁이 갖는 고유한 합리성을 인정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육은 ‘과잉경쟁’이 되어 경쟁이 갖는 고유한 합리성을 파괴하면서, 한국 경제의 발전을 가능케 한 ‘인적자원’의 형성과 배분을 왜곡하는 단계까지 이르렀습니다. 사회복지와 사회적 안전망이 취약한 우리 현실에서 학벌이라는 ‘개인적 안전망’이라도 마련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미친 경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과잉경쟁은 서로간의 관계를 적대적으로 만들고, 사회 구성원들의 내면성을 파괴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초중등교육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여실히 나타납니다. 다른 학생을 공동체 구성원으로 보기보다 ‘적대적 경쟁자’로 간주하는 체제하에서 학교 폭력은 대표적인 인간성 파괴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넘버 원’ 교육에서 ‘온리 원’ 교육으로 전환할 때입니다. 아이들 하나하나가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존재이지 않습니까. 아이들 각각이 다양성을 꽃피울 수 있고,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교육의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 벽화 그리기 체험을 하고 있는 조교육감

교육의 빈부격차는 어떻게 줄여나갈 계획이신지요.

저는 ‘교육불평등에 도전하는 교육감’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씀드릴 정도로 교육격차 해소에 관심이 높습니다. 학벌로 상징되는 교육 불평등 구조는 국민적 개혁과제입니다.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에게는 너무 많은 보상, 패배한 사람에게는 평생의 열패감이 따라 다니는 구조는 문제가 있습니다. 학벌과 직업에 의한 경제적 불평등이 교육 경쟁의 과잉을 낳고 과잉 경쟁은 다시 교육 불평등으로 이어집니다. 잘 사는 집 아이들은 없는 재능도 돈으로 만들어낼 수 있지만 못 사는 집 아이들은 있는 재능도 계발하지 못하는 사회가 돼 가는 것은 사회발전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교육을 통해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재생산’되는 상태를 끊고자 합니다. 물론 교육감에게 있는 권한이 제한적이라 저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가능한 범위 내에서 다양한 방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교육혁신지구, 학교 평등예산제, 교육복지사업 등이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구체적 사업들이지요. 특히 교육혁신지구는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교육청과 지자체, 지역사회와 민간단체가 함께 손잡는 새로운 협력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교육청과 여건이 열악한 자치구가 협력해서, 어려운 지역의 학교 학생을 위한 교육프로그램과 지원사업을 펼칠 것입니다.

 

최근 당면한 일련의 문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요.

2016년부터 자유학기제가 전면 시행되고, 올해는 서울 380여개 중학교의 70%가 자유학기제에 돌입하므로 체험 장소나 다양한 컨텐츠 준비가 어려워 학교가 고민이 많을 것으로 압니다. 자유학기제는 창의적 교육으로 전환해나가는 데 매우 좋은 제도라 생각합니다. 서울은 교육청이 전국 최초로 자치구 25개 전체와 비용을 함께 부담해서『진로직업체험센터』를 만들어서 지원하고 있어서 타시도 보다는 여건이 좋은 편입니다. 그러나 체험활동 시기가 일정한 때에 몰리고, 학생들이 선호하는 프로그램으로 몰려서 학교에서 운영이 힘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공공기관과 대기업, 대학, 문화예술단체들과 계속 협약을 맺으며 협조를 약속받고 있습니다. 훌륭한 강사와 프로그램을 가지고 학교로 찾아가서, 학생들이 안전하게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더 폭넓게 프로그램과 협조기관을 발굴하고 확대해 나가겠습니다. 또 하나의 큰 고민은 누리과정 어린이집 보육료 문제입니다. 교부금은 줄고 인건비는 대폭 늘어난 상황에서 교육청 예산이 9천억 정도 부족했지요. 그럼에도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직접 피해를 볼 수 있는 문제라 파국으로 가지 않도록 교육청 예산으로 3개월치를 편성했습니다. 나머지는 지방재정법 개정이후 지방채를 발행하여 지원할 예정이었는데,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어 걱정입니다.

 

▲ 조희연 교육감이 종로산업정보학교에 방문해 제빵특기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교육에서의 '복지‘는 어느 선까지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앞으로 확대하는 부분에서는 국민적 합의와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겠지만 현재 시행되고 있는 부분을 되돌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무상급식, 무상보육이라고 표현하는 공공복지는 국민들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재정적자가 심각해질수록 양보와 단합을 통해 극복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당장 어려우니 급식과 아이들 보육 지원을 줄이자는 것이 과연 현명한지 제고해야 합니다. 기존 시행되던 것은 지난 몇 년간 여야 모두의 정책적 지향으로 교육 복지에 대한 탄탄한 국민적 합의와 바람으로 이루어 진 것이라 봅니다. 젊은 여성들이 양육과 보육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출산율 저하를 막을 수 있습니다. 지금의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은 한국형 복지의 두 가지 중요한 축입니다. 국민들의 세금을 국민들에게 돌려드리는 것이니 무상이 아니라 공공급식, 공공보육으로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새 학기를 맞이한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그동안 12번의 원탁회의에서 천 명이 넘는 학부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험난한 세상에서 자녀들이 행여 뒤처질까봐 경쟁의 대열에 억지로 밀어 넣는 부모의 안타까운 마음은 어느 지역의 부모님들이나 똑같더군요. 부모님들은 같은 고민을 각기 따로 하고 계셨습니다. 혹시 자녀에 대한 사랑이 앞선 나머지 부모님들께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아이의 일을 대신 해결해 주시지는 않으셨는지요? 이로 인해 오늘날 많은 아이들이 ‘결정 장애’를 앓고 있다고 합니다. 서울교육은 학생·교사·학부모·시민 모두가 주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학부모님께서 더 좋은 교육을 위해 의견을 내거나 결정에 참여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동안은 학부모 활동도 학교의 일손을 돕거나 수동적으로 강연을 듣는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언제든지 마음 편히 교육의 주인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현재 학부모회 구성에 관한 조례가 시의회에 상정되어 있습니다. 또 학교를 매개로 하여 학부모 동아리와 같은 만남과 토론의 장이 적극적으로 만들어 질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학교의 문턱을 넘어 오셔서 함께 공부하고 참여하시기를 청합니다. 부모님들의 작은 목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고 경청하면서 정책에 반영하겠습니다. 학교가 바뀌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대신 변화를 만들기 위해 손을 잡아 주십시오. 학부모님들과 함께라면 더 큰 힘으로 교육의 혁신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작권자 © 컨슈머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