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소비자보호법이 제정되면서부터 정부는 소비자피해구제 업무를 추진해 왔다. 정부는 산업사회에서 다발하는 소비자피해와 분쟁을 일일이 법원의 민사재판을 통해 구제하고 해결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즉 분쟁해결에 드는 사회적비용도 과다하고 소비자의 권리도 제대로 보호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벌써 정부가 소비자구제행정을 시작한지 30년이 넘었다. 구제행정 절차는 행정지도를 통한 합의권고와 전문가 회의를 통한 준사법적 조정결정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최근 들어 대기업에서 정부(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결정을 무시하는 사례가 많아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정호준 국회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21일 한국소비자원으로부터 ‘최근 5년간 10대기업 분쟁조정 현황’을 제출받았다. 이에 따르면 2009년에는 10대 기업과 관련하여 총 122건 조정결정이 있었고 이 중 116건이 성립돼 95%의 소비자가 구제를 받았다. 그러나 2010년부터 80.9%, 2012년 73.8%로 낮아지더니 지난해에는 61.1%까지 급락했다.

정부는 1차로 행정지도를 통한 합의권고가 결렬되면 2차로 각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조정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대기업이 수용하지 않으면 정부의 구제행정은 종료되고 소비자는 법원의 소송절차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최근 10대 기업에서 조정결정을 수락하지 않는 사례가 급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기업이 정부가 설치한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결정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2009년 10대 기업의 조정 결정 불복 건수는 전체 122건 중 2건(1.6%)에 불과했으나 2010년에는 9.5%로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전체 89건 중 27건(30.3%)이나 수락을 거부했다.

특히 현대·기아자동차는 2009년과 2010년에는 조정결정 수용률이 높았으나 이후 불복하는 사례가 급속히 늘었다. 2013년에는 소비자분쟁조정위의 배상 및 수리·보수 조정결정을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공기 운항 지연에 따른 분쟁이 많았던 한진(주)도 2009년에는 조정결정을 모두 받아들였으나 이후에는 관련된 조정결정에 모두 불복했다.

기업별로는 CJ가 지난 5년간 9건의 조정 결정을 모두 받아들여 100% 구제가 이루어졌고 삼성과 LG의 조정 결정 수용률도 각각 86.6%, 86.1%로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반면에 현대·기아자동차는 지난 5년간 31건의 조정결정 중 18건(58.0%)만 수용했고, GS와 롯데의 조정결정 수용률도 각각 60.0%와 66.6%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정호준 의원은 조정결정을 거부하는 대기업에 대해 다양한 제재방안을 주문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제재방안 검토도 필요하다. 그러나 제재방안 도입 보다는 대기업 스스로 정부 소비자정책에 대한 적극적 참여와 자기 고객을 위한 자율적 혁신운동이 우선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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