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트러지지 않는 일관된 고결한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의 연주 일품”

흐트러지지 않는 일관된 고결한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일품이었던 첫날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과 성악진들의 기량이 출중해 오케스트라 반주가 크게 빛나지는 못했던 양일의 연주로 대비될 수 있을 것 같다.

무대와 객석의 교감을 더하는 빈야드 스타일의 새 콘서트홀로 최상의 음향에 찬사가 쏟아진 롯데콘서트홀에서 지난달 8월 29일과 31일 연이틀 있었던 이태리의 자부심 라 스칼라 극장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공연은 유럽의 명문 콘서트홀에 입장해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할 만큼 밀라노의 라 스칼라 무대를 실제로 접하는 느낌이었다. 외국 연주단체로는 롯데콘서트홀의 첫 무대를 장식한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는 단결되면서도 라 스칼라 극장만이 갖고 있는 기품있는 음향을 확인케하는 무대를 제공, 연이틀 입장시 단원들이 착석할 때까지 열띤 환영박수가 오래 이어지는등 근래보기 드문 광경을 연출했다.

▲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첫날의 공연에 만족을 표시하며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는 정명훈 감독. (사진: 롯데문화재단)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보통 연말에 한두번 들은 것이 아니지만 외국 오케스트라의 알찬 연주를 오랜만에 듣게 되니 무척 새로웠다. 더욱이 국내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은 가장 빠른 매진을 기록하는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연말 최고 단골 레퍼토리가 아니던가. 바짝 잡아당기는 정명훈의 지휘 특기가 발휘되며 최고조의 고양은 역시 “모든 인류가 한 형제가 되도다! 당신의 부드러운 손길이 머무르는 곳에서”, “백만의 사람들이여, 모두들 껴안아라. 온 세계의 입맞춤을 받으라. 형제여,”, 그리고 “아름다운 신의 불꽃이여! 낙원의 딸들이여”로 라 스칼라 합창단이 가세한 4악장에서 발현되었다.

31일 있었던 중후한 매력이 돋보이는 중세의 정치 드라마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 콘서트 버전 역시 Prologue, Act I에서부터 스피디한 연주가 흥미를 돋궜다. 깔끔하고 확 끌어당기는 정명훈의 지휘스타일이 오페라 무대 전막공연이 아닌 콘서트 버전의 아쉬움을 연주내내 느끼게 했다.

특히 마리아 보카네그라역의 드라마틱 소프라노 카르멘 지아나타시오의 성량이 죽죽 뻗어나가는 느낌과 중후한 성량의 바리톤 시몬 보카네그라역의 시모네 피아졸라등 본토 캐스팅 성악진의 손색없는 열연이 Act II, III으로 이뤄진 2부까지 이어져 1988년 이후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동반 첫 내한 이상의 기대이상의 충족감을 줬다. ‘음악이 이해나 인식하는 것이 아닌, 체험하는 것“이라는 전제에서 최고 수준의 콘서트 버전을 체험케해 시몬 보카네그라 콘서트 버전의 연주내내 관객들로 하여금 감상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든 순간 순간들이었지 않았나 싶다.

시몬 보카네그라 연주에서 또하나 인상깊었던 것은 서울무대에서 8개월만의 공백을 무색케하는 정명훈의 암보에 의한 깔끔한 지휘로 관현악과 오페라 지휘에서 녹슬지 않은 그의 지휘기량을 유심깊게 지켜봤다. 정명훈이 서울시향을 10년 이끌어온 공도 치하할 만한 일이지만 일본의 오자와 세이지처럼 유럽이나 미국등 해외에서 세계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이력을 쌓았더라면 그의 성가가 현재보다 훨씬 더 높았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을 터, 11월초에 롯데콘서트홀에서 다시 있게 될 빈필 내한공연의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과 브람스 교향곡 제4번의 연주때 정명훈의 지휘봉이 어떻게 허공을 가르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서울에서 거의 30년만에 클래식 전용 홀로 탄생한 롯데콘서트홀은 기획만 잘해 세계적 수준의 내한 연주단체들이 계속 무대를 채운다면 초반이긴 하지만 당분간 인기면에서 기존의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을 능가 압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롯데콘서트홀에 처음 들어서자 마자 웅장한 느낌과 함께 표를 많이 팔아보겠다는 것보다 음악적 행위를 위해 만들어진 콘서트홀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음악계에 오래 종사한 한 지인 음악계 인사는 “기획을 잘해야 좋은 공연이 나온다”고 롯데콘서트홀의 장래를 축원하면서도 맹모삼천지교처럼 롯데콘서트홀 주변에 산재해있는 점포몰과 음식점등 음악적 환경으로 채워지지 못하고 있는 점은 옥의 티로 꼽으며 못내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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