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우리나라는 소비자보호법을 처음 만들었다. 불량상품, 부당상술과 피해를 보상하지 않는 기업으로부터 소비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동법은 소비자보호위원회에 부당거래와 위해방지를 위한 시정권한을 부여했다. 각 부처에게는 자신이 주관하는 품목과 관련된 사전예방과 사후구제 업무를 동시에 부여했다.
그로부터 6년 동안 피해를 입은 소비자는 점점 늘어났으나 기업으로부터 보상받기는 하늘에서 별 따기였다. 기업을 이기기 위해 비싼 수임료를 내고 변호사 도움을 받는 다는 것은 소비자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피해를 입은 상품마다 담당부처가 달라 소비자는 해당 부처를 찾아 구제를 호소해야 했다. 어렵게 해당 부처를 찾아도 담당 공무원의 전문성 부족과 피해구제업무에 대한 관심 부족으로 보상처리는 지연되고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소액 피해로 소가(訴價)가 적은 소비자소송은 변호사 관심 밖에 있었다. 기업은 법원으로 가서 해결 하자며 소비자권리를 존중하지 않았다. 결국 정부는 1987년 소비자보호법을 개정하여 소비자보호 조직을 정비했다. 경제기획원이 각 부처의 소비자피해예방시책을 총괄하도록 했다. 그리고 한국소비자보호원을 설립하여 각 부처에 흩어져 있던 피해구제 업무를 한군데 모아 전담 처리토록 했다.
경제기획원은 각 부처의 소비자피해 예방시책을 독려하고 한국소비자보호원은 소비자피해구제 업무와 정책연구 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기업위주의 경제성장정책으로 뒷전에 밀려있던 소비자권리가 어느 정도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각 부처는 담당분야의 산업육성에 무게를 두면서 소비자피해예방시책이 다시 소홀해졌다. 경제기획원도 소비자보호시책보다 경제개발시책에 열중했다. 1980년부터 소비자보호법은 있었으나 국가는 그 의무를 외면했다. 최근 금융소비자정책 소홀로 발생한 서민피해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성장에 무게중심을 둘 수밖에 없던 경제개발 시대의 아픔이다.
소비자운동에 의지하며 참아 온 세월이 어느덧 30년을 훌쩍 넘어섰다. 이제는 정부가 소비자권리를 제대로 보호할 때가 되었다. 산업육성에 무게를 두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보호에도 무게를 두자는 말이다.
지금부터 각 부처는 품목별로 소비자피해예방을 위한 정책개발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앞으로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소비자피해구제를 위한 법적 권한과 조직을 더욱 강화시켜야 한다. 각 부처의 소비자피해예방 노력과 소분위의 소비자피해구제 성과가 합쳐질 때 소비자의 아픔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법률만 만들어 놓고 제대로 지키지 않는 정부가 어떻게 기업과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부터라도 소비자보호의무를 게을리 하지 않는 국가의 균형 있는 역할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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