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모 할머니는 매년 설 차례 준비할 때면 신경이 적지 않게 쓰인다. 그래서 그런지 명절이 되면 늘 잇몸이 붓거나 이빨이 아파 동네 치과를 찾았다. 금년에도 설 명절 전날 치과치료를 받았다. 문제는 치료를 받고 처방전을 받은 후였다. 병원 옆 상점에 있는 약국이 설 명절 때문인지 문을 일찍 닫았다.


부득이 아픈 이를 꽉 물고 다른 동네 약국을 찾아 갔다. 다행히 다른 동네 약국은 문을 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처방전을 보던 약사는 치과에서 처방한 약이 자기 약국에는 없다는 것이다. 다른 약국을 또 찾았다. 그 약국 또한 처방전에 적힌 제약회사 약이 없었다. 할머니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치통은 멈추지 않는데 약은 구할 수 없고, 명절 내내 약국과 치과는 휴무에 들어갔으니 말이다.


할머니가 고생한 사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많은 병변의 환자들이 처방을 받고 이 약국 저 약국 찾아다니는 고생을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병원에서 처방전을 작성할 때 병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는 약의 성분을 기록하여 처방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 성분이 들어 있는 특정 제약회사의 약품명을 기록하여 처방하기 때문이다.


약국에서는 모든 제약회사의 약품을 전부 구비할 수 없다. 동일한 성분의 약이라도 제약회사마다 그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사는 자기 약국에 없는 제약회사 약품명이 기록된 처방전을 들고 오는 환자에게는 동일한 성분의 타사 제품이 있어도 팔 수 없게 된다. 환자는 결국 아픈 몸을 이끌고 처방된 제약회사 제품이 구비된 약국을 찾을 때까지 동으로 서로 뛰어 다녀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환자를 이리 저리 뛰어 다니게 해서는 안 된다. 동일한 약효 성분을 갖고 있는 약이라면 어느 회사 제품을 살 것인지 환자에게 선택권을 돌려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어느 약국에서나 병원에서 처방한 약효 성분의 치료약을 구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병원에서 제약회사 약품명이 아닌 성분 이름으로 처방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병원에서는 성분명 처방만 할 경우 약사의 지위 남용을 염려할 수도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병원에서 성분명 처방과 동시에 약품명 처방을 함께하여 가급적 의료인이 추천한 제약사 약품을 구입하도록 안내하는 방식도 생각할 수 있다. 병원에서 성분 이름만으로 처방할 경우 약국에서도 지켜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여러 제약사 약품 가운데 특정 제약사 약품만을 강매하여 환자의 불만을 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성분명 처방을 할 경우 약국과 제약회사 간의 리베이트 문제를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약국과 환자가 당사자가 되어 해결할 별개의 문제이다. 이를 우려하여 환자에게 약품 선택권을 배제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이다. 새해에는 적시에 약을 구입하지 못하여 발을 동동 구르는 환자의 애환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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