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계약이라 함은 기업과 소비자 간에 합의를 이룸으로써 이루어지는 법률행위이다. 의사표시 합의라는 것은 원래 각 당사자가 서로 대등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기업과 소비자 간의 계약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결국 그 관계가 ‘갑’과 ‘을’이라는 두 단어로 표현되면서 불평등관계로 인식되어 온지 오래되었다.

소비자계약 이후 불량하자 상품이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피해가 있는 경우에도 ‘갑’과 ‘을’이란 불평등 관계로 소비자는 눈물을 흘리며 해결해야 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상호 간에 주장을 입증하고 반론을 주고받는 역량과 구조에 있어서 평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초 ‘갑’과 ‘을’은 계약서 상 계약당사자 명칭이 반복되는 데에 따르는 번거로움을 간소화하기 위해 쓰여 졌다. 그러나 기업들이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예방 활동에 있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여 소비자에게 눈물을 흘리게 함으로써 계약서상의 ‘갑’과 ‘을’이 강자와 약자, 평등하지 않은 갑을관계로 인식되게 이르렀다.

요즘 ‘갑을관계’가 매우 뜨겁게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다. 직접적 갑을관계 뿐만 아니라, 항상 ‘갑’의 위치에서만 살아온 일부 사람들의 부도덕한 행위까지 연일 보도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모든 조직과 조직, 사람과 사람 혹은 조직과 사람 사이에 오직 ‘갑을관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갑을관계’ 관련 보도들이 연일 이어지면서 을의 입장에서 지쳐있던 국민들은 ‘갑을관계’만 있는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기업과 거래하는 소비자들도 불편한 마음은 감추기 어렵다. 과거에도 ‘갑을관계’, ‘갑의 횡포’라는 단어는 수없이 거론돼 왔지만, 실제 소비자에 대한 기업의 경영철학이 별로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기업들이 소비자 불만해소 및 기업 이미지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들이 다소 실망스럽다. 대부분 경영대상을 받았다는 수상홍보나 직원에 대한 교육, 관리강화 일색이다. 조직과 기업문화 자체가 변하지 않은 채 소속 직원관리 강화와 수상소식만 전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소비자피해가 발생하면 해당직원만 징계하고 교육하려고 한다. 직원 교육보다 기업문화부터 소비자중심으로 근본적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업이 변하고 싶은 것보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부터 혁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피해자와의 소통과 화합이 우선되어야 한다. 서둘러 피해자와의 소통을 위한 보상기구를 강화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기업과 소비자 간 ‘갑을관계’의 고리를 풀지 못한다면 ‘경제민주화’는 실현되기 어렵다. 국가에서도 정부기관, 공기업 등을 시작으로 갑을관계 개선대책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기업과 소비자 간에도 더 이상 ‘갑의 횡포’가 지속되지 않아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기업과 소비자 간에 ‘갑을관계’로 인한 소비자피해가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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