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이 계속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것은 기업 서비스센터나 고객센터 직원들 화법이 이상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피해를 입은 소비자가 전화를 하면 피해를 위로하는 것이 순서인 데 그 것은 제쳐두고 소비자과실부터 캐려는 분위기를 접하곤 한다. 피해발생에 대해 사과의 말을 듣는 다는 것은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피해를 입은 소비자는 뒷전이고, 어떻게 하면 피해발생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이유를 찾으려는 분위기이다. 이러한 화법에서 소비자들은 배신감과 허탈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사람보다 돈이 더 위에 있다는 느낌이 너무 크게 와 닿곤 하기 때문이다. 소비자과실에 대한 내용만 주장하고 회사에 유리한 팩트만 확인하려는 화법에서 소비자들은 종종 언성이 높아지곤 한다.

언성을 높이는 소비자에겐 느닷없이 블랙컨슈머라는 오명이 따라 붙는다.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따져 보지도 않고 회사에 유리한 블랙컨슈머라는 팩트만 부각 시킨다. 더 나아가 감정노동자 보호라는 프레임을 걸어 소비자를 더욱 위축시킨다. 요즘엔 피해자가 고객센터에 전화만 걸면 위로도 받기 전에 감정노동자 보호멘트를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

물론 감정노동자 인격은 보호되어야 맞다. 또한 매너 없는 소비자는 지탄 받아야 옳다. 그러나 기업이 소비자를 응대하는 직원들에게 피해에 대한 위로보다 책임을 면하려는 화법으로 상담토록 하는 이상, 종국에는 분노한 소비자 촛불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감정노동자 피해도 피해고객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옹졸한 경영철학이 낳은 산물일 수도 있다.

피해를 입은 고객이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피해해결을 돕는 일꾼인 일선창구 직원에게 밉게 보일 이유가 없다. 그런데 상담직원 화법을 접하면서 피해 해결을 도와주는 분이 아니라 기업 편에 설 수밖에 없는 남의 편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을 느끼면서 이내 기업에 대한 불만을 창구 직원에게 쏟아 붓는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이 의문을 갖는 것은 고객센터 화법뿐만이 아니다. 화법을 통해 고객센터가 남의 편임을 확인한 것도 허탈한 데, 피해보상을 요구하면 국가기관에 신고하라며 너무 당당하게 안내하는 행태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국가기관이 얼마나 우습게 보이면 피해확인도 없이 피해보상을 위한 소통책무를 국가에 전가할 수 있는 것인지 놀라워하고 있다.

소비자피해를 해결하는 국가기관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가해행위가 형법을 위반했을 때에는 경찰과 검찰, 행정법 위반 시에는 담당 행정기관, 민사 분쟁 시에는 각종 조정기관이나 민사법원 등이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점점 강조되고 있는 이 시대에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로 피해 입은 고객에게 법대로 하라고 하는 것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물론 소비자 가운데 불합리한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도 소비자를 설득하여 납득시키는 자세가 우선되어야 한다. 기업에 책임 없는 사건을 국가기관에 가라고 안내하는 것도 문제이고, 책임 있는 사건을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에 넘겨 해결하려는 것도 문제라 할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고객을 내편으로 생각하는 사회적 경영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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