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비자원 전경/한국소비자원=사진
한국소비자원 전경/한국소비자원=사진

[컨슈머포스트=정진규 기자] 피해당한 소비자 A씨는 대기업 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 건 소비자가 많으니 기다리라는 음성녹음 파일이 반복되었다. 약 20명의 소비자가 대기 중이라고 했다. 10분을 기다려도 안내 방송만 반복되었다. 연결음이 들려 응답을 기다렸으나 다시 기다리라고 했다. 20분을 기다려 연결되었으나 전화에서 감정노동자를 보호해 달라는 녹음이 흘러나왔다.

피해 고객 A씨는 상담실 직원에 피해 사실과 아픈 마음을 호소하려 했다. 그러나, 상담원 감정을 보호해야 한다는 안내 방송을 듣고 황당했다고 했다. 즉, 피해 고객 A씨는 소비자 보호 역량을 갖춘 대기업 전문가와 통화하기를 기대했는데, 오히려 감정노동자라며 대기업 직원 감정을 보호하고 위로해 주어야 한다는 방송을 듣고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이것은 예컨대 심리 치유를 위해 심리상담사를 방문했더니, 심리상담사가 내방 고객에게 자신의 심리부터 보호해 달라고 요청하는 모습과 다름이 없다고 했다.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하자 피해로 우울하고 아픈 마음을 치유 받고자 했던 피해 고객 A씨는 대기업이 전문가라고 내세운 상담원 감정을 보호하라는 안내 방송에 구토증세마저 느꼈다고 했다.

피해자 A씨는 결함상품으로 인한 피해로 짜증스럽고 우울한 자신의 감정은 누구에게 위로받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대기업 입장을 백번 이해하더라도 전화를 건 고객에게 관련법에 의거 처벌된다는 내용을 전달하며 압박하는 전화는 없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소비자와 소통하려면 진정성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 피해 고객 A씨 생각이다.

소비자와 대기업 간 소통이란 고객의 호소를 경청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즉, 소비자의 아픈 목소리를 기업주가 들어주는 일이다. 그런데 많은 기업주가 소비자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보다 대기업의 소리를 소비자에게 주입하려는 노력을 더 많이 하고 있다. 즉, 아픈 소비자 감정을 외면하고 대기업 입장에서 필요한 정보만 주고받으려고 하고 있다.

협상과 소통은 다르다. 협상은 상호 간에 목적 달성이나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성과의 수단이다. 반면에 소통은 성과의 수단이 아니라 상대의 호소와 아픔을 들어주기 위한 배려의 수단이다. 요즘 대기업은 소비자를 향해 제품을 팔고, 유무상 수리를 정하고, 책임을 가리는 협상은 열심히 한다. 반면에 고객 배려와 품질 혁신을 위한 경청과 위로에는 인색하다.

소비자의 아픈 감정을 위로하고 이를 분석하여 혁신경영에 반영하려는 생각이 없으니 이를 수집하려는 동력도 생길 수가 없다. 대부분 대기업은 오프라인 상담실을 폐쇄했다. 전화 상담실을 운영하면서 전화요금을 대부분 소비자에게 부담시키고 있다. 그뿐 아니라 전화비를 내면서 수 십분 씩 녹음된 음성을 들으며 기다려야 하는 일이 매일 매일 벌어지고 있다.

또한, 대기업은 소비자가 전화를 들고 오래 기다리는 이유가 소비자 탓이라고 말한다. 즉, 고객이 건 전화가 많이 걸려와서 그렇다는 것이다. 창구에 배치된 상담원 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말은 절대 안 한다. 적반하장이다. 대기업은 소비자 호소를 대하는 관점부터 바꿔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소비자 호소가 가능한 소비자 상담 시스템을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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