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성석 (사)이순신리더십연구회 상임이사/경제학박사

모두들 위기의 시대라고 말한다. 난세에는 영웅이 나타나기 마련. 그러나 이 시대에 난세의 영웅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세월호 참사 등 각종 사건 사고로 얼룩 진 2014년 현재는 간절하게 영웅을 원했고, 결국 400년 전의 영웅을 소환해왔다. 영화 명량의 1700만 흥행으로 대변되는 이순신 열풍이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 그렇다면 한국의 대표적 위인 이순신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교과서, 소설, 드라마, 영화에서 표현된 이순신의 모습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10년 전부터 이순신 장군을 연구하고 그의 업적을 전파하는데 힘을 쏟아온 이순신리더십연구회 방성석 이사를 만나 이순신에 대해 물었다.

 

 

먼저 이순신리더십연구회라는 단체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저희 연구회는 10년 전인 2004년 설립되어 현재 1백여 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두 달에 한 번씩 정기세미나를 개최하여 전문가의 주제발표와 토론을 통해 이순신의 사상과 업적을 연구하고 있으며, 수시로 전적지를 답사하고 이순신 관련 기념행사에 참가하여 이순신의 정신과 리더십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훈련캠프를 통해 이순신의 정신을 배울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충무공 이순신의 업적과 리더십을 발굴하여, 그 연구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고 서적으로 출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 및 훈련 사업을 통해 전 국민에게 충무공의 정신과 리더십이 전파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 해군사관학교 훈련캠프에서 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저의 고향이 충청도 아산입니다. 이순신이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고향이지요. 일찍부터 현충사를 드나들며 충무공 이순신에 대해 익히 알게 되었습니다. 또 이순신의 장인이신 방진(方震)이 보성군수를 지낸 저의 13대 직계 할아버지십니다. 이순신은 저의 온양방씨 가문에 사위가 되시기 때문에 더 깊이 빠져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희 연구회 이사장님이 경영대학원 시절 논문지도를 해주셨던 서강대 지용희 교수님이십니다. 함께 모시고 연구하다보니 어느새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가 연구한 이순신은 위기의 조선수군을 경영한 위대한 경영자였습니다. 위기경영자였습니다. 위기의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저의 모습과 똑같았던 것이지요. 인재도 부족하고, 기술도 부족하고, 자금도 부족한 중소기업의 CEO, 군사도 부족했고, 군선도 부족했고, 군량도 부족했던 조선수군의 CEO는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순신은 위기의 임진전쟁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고 백전백승 하지 않았습니까? 패배가 용납되지 않는 기업의 CEO가 반드시 배워야할 리더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원은 어떤 분들로 이루어져 있나요?

각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동하시는 분들입니다. 예컨대 이사장이신 지용희 전 서강대 경영대학원장, 이사이신 송자 전 연세대총장, 한영실 전 숙명여대 총장, 신성오 전 외교안보연구원장, 서영길 전 해군사관학교장, 오세종 전 장기신용은행장, 정성택 인하대 명예교수, 염정순 토프톤 부회장, 그리고 감사이신 김성수 변호사 전 서울지법판사, 조시영 대창기업 회장 등 교수, 기업인, 법조인, 외교관, 기업인, 예비역 및 현역 군인, 문인, 영화인, 국악인, 학생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 방성석 이순신리더십연구회 상임이사 겸 이글코리아 대표

상임이사님은 어떤 직업에 종사하고 계신지요.

저는 30년 이상 무역회사 (주)이글코리아를 경영하고 있는 기업인입니다. 방탄조끼 같은 군수물자를 국제입찰을 통해 수출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무역진흥을 통해 국가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철탑산업훈장’과 ‘대통령표창’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무역경험을 바탕으로 대한상사중재원의 무역중재인으로서 국제간의 무역 분쟁을 조정하고 판정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무역일선의 경험을 후학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광운대학교, 가천대학교 등에서 겸임교수를 역임했습니다.

최근 화제가 된 영화 명량을 어떻게 보셨는지요.

명량(鳴梁)이 개봉된 지 40여일 만에 1,700만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과연 역대 최고의 기록입니다. 이 숫자에는 아마도 제가 4번씩이나 관람한 것도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영화가 많은 국민들에게 임진왜란의 역사, 명량해전의 의미, 이순신의 정신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제작자와 감독에게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간 지속되는 경제침체, 세월호 침몰사고 및 군부대 인명사고로 인한 사회불안, 북한의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도발로 인한 안보불안, 일본 아베정부의 우경화에 따른 외교 갈등 등 총체적 위기의 시대에 이순신의 탁월한 전술전략과 리더십으로 어떠한 위기상황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줬기 때문입니다.

영화 명량의 허점을 말씀해 주신다면.

이순신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아쉬운 점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파직당한 통제사의 심정,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백의종군하는 장수의 고뇌, 하늘(天只)이었던 어머니의 죽음을 애통하는 자식의 슬픔, 수군을 폐하라는 임금의 명령에 번민하는 신하의 갈등 등 명량해전 당시에 처했던 이순신의 내면을 이해하기엔 너무나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또 역사적 사실과 어긋나는 부분이 여러 곳 발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영화라는 장르가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문화예술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많은 관객들이 영화 그 자체를 역사적 사실로 규정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참전한 조선과 일본의 전선 13:133척을 12:330척으로 홍보하는 내용, 참전하지도 않았던 거북선을 불태우고 그 명칭도 귀선(龜船)을 구선으로 칭하는 장면, 경상우수사 배설이 이순신 암살을 시도하고 거제현령 안위의 화살에 맞아 죽는 장면, 이순신이 금기로 여겼던 백병전을 직접 명령해 배 위에서 싸우는 장면, 이순신이 사용했던 화전(火戰)을 오히려 왜적이 사용하는 장면, 조선수군의 당파전술은 총통으로 먼저 깨부수는 것인데 배끼리 부딪히는 충파로 그려지는 장면, 조선시대 도성의 공식명칭 한성을 고려시대 도성 명칭인 한양으로 칭하는 내용 등에서 그러합니다.

▲ 이순신리더십연구회 6월 정기 세미나

정기 세미나에서는 주로 어떤 주제를 다루나요?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순신의 위기관리 리더십을 중점적으로 이순신의 출생과 성장과정, 인격형성의 배경, 이순신과 임금 선조의 관계, 조정대신과의 관계, 조선조정의 임진왜란 대비책, 조선을 침략한 일본의 정세, 조선을 지원했던 명나라의 참전실상, 이순신의 수군경영 실태, 유비무환의 대비책, 지휘했던 전술과 전략, 창제했던 거북선, 총통 등 조선시대의 무기, 선조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이순신 등등 다양한 각도에서 여러 가지 주제가 연구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제53회 정기세미나를 열었는데, 이순신 장군 한 분만으로도 이렇게 오랫동안 세미나를 진행할 수 있나요?

이순신을 연구하는 분야가 다양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백절불굴의 인간 이순신을 바라보는 관점, 백전백승 승리의 요인을 분석하는 시각, 임진전쟁의 국제적 정세분석 등이 여러 각도에서 분석되고 연구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역사학자로서, 서지학자로서, 경영학자로서, 기업경영인으로서, 문학인으로서, 법률가로서, 예술인으로서 바라보고 분석하는 방법과 시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순신을 연구하는 다양성에 가치를 두고 각계각층 여러 각도에서 국민들이 따라 배울 수 있는 롤 모델 이순신을 연구하고 벤치마킹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연구회를 운영하시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점이 있다면?

연구회 창립초기부터 이사로 참여하시고 거액을 종자돈을 기부하셨던 세아그룹 고 이운형 회장님의 각별한 ‘이순신사랑’을 잊을 수 없습니다. 특별히 기업인으로서 ‘이순신리더십’에 관심을 갖고 지원하셨던 이 회장님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후에도 세아해암학술장학재단을 통해 사전 약속하셨던 지원금으로 ‘이순신리더십’을 널리 전파하도록 기여해 주셨습니다. 고 이운형 회장님의 명복을 빌고 재단과 가족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해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혹은 일반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을까요?

몇 가지만 말씀드리면 이순신은 전쟁만 잘하는 군인이 아니었습니다. 이순신은 기록을 중시하는 선비이자 문인이었으며, 스스로 홀로서는 조선수군의 위기경영자였으며, 살아남기 위해 창조경제를 실천했던 과학자였습니다. 즉 일찍이 유학을 공부했던 이순신은 뛰어난 인문학적 감성으로 많은 기록들을 남기셨습니다. 예컨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난중일기, 임진전쟁의 실상을 볼 수 있는 임진장초, 이순신의 내면을 볼 수 있는 서간문 등 수많은 기록들이 4백 년 전 인간 이순신 그리고 임진왜란 그 질곡의 역사와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기록유산인 것입니다. 또 이순신은 전쟁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정의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백성의 식량과 군사의 군량을 마련하기 위해 둔전을 경작했고, 싸움이 없는 날은 물고기를 잡고, 소금을 굽고, 질그릇을 구워서 부족한 군량을 충당했습니다. 또한 거북선을 창제하고, 조선의 조총을 개발하고, 염초를 개발하여 화약을 제조하는 등 창조적 사고와 혁신적 의지 그리고 기술적 융합으로 창조경제를 실천하신 분입니다. 이러한 위기경영 능력이 축적되어 7년 전쟁 40여회의 해전해서 단 한 번도 패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도 이순신의 자살설이나 은둔설이 떠돌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순신이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장렬히 전사한 것은 정사로 기록된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컨대 선조실록에는 당시의 군문도감, 좌의정 이덕형, 도원수 권율 등이 이순신의 전사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전투에서는 통제사 이순신 뿐 아니라 가리포첨사 이영남, 낙안군수 방덕룡, 흥양현감 고득장 등 10여명의 장수가 죽었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일차사료인 안방준의 ‘노량기사’, 조경남의 ‘난중잡록’, 유성룡의 ‘징비록’ 등에서 전사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기록들에는 이순신의 시신(屍身)을 확인한 사람들, 즉 군관 송희립, 손문욱, 맏아들 회, 조카 완, 몸종 금이 등의 이름까지 거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순신의 전사는 당시의 장례절차로 보아 확인할 수 있는데, 선조실록에는 ‘국가의 예장(禮葬)으로 치르기 위해 예관 이축(李軸)에게 시제문을 들려 파견했고, 이순신에게 증직치부하고 관에서 모든 경비를 지원하는 관비장사(官庀葬事)를 지시했다’고 정사로 기록된 사실을 놓고 임금의 시의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은둔했을 것이라는 허구의 상상력으로 각색하고 야사의 문학으로 성웅의 죽음을 희화화 하는 일은 이제 사라져야할 것입니다.

 

책도 출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작년에 <위기의 시대, 이순신이 답하다>라는 제목의 서적을 출간했습니다. 사실 책을 준비하면서 많이 망설였습니다. 문학인도 역사학자도 아닌 경영자가 역사와 관련된 글, 특히 국민 모두가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이순신에 대해 책을 쓴다는 두려움이었지요. 그러나 현직 경영인이 기업경영의 관점에서 이순신에 접근하고 조망한 서적은 거의 없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 시작했고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제가 이순신 연구에 더욱 더 매진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해줬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매우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굉장한 달변가이신데, 강의도 하시는지요.

네, 부족하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순신 리더십에 관한 특강을 하고 있습니다. 농식품공무원 교육원, mbc 인재개발원, 중앙공무원 교육원, 올바른 국가관심기 운동본부, 로타리 클럽 등에서 강의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제 강의를 통해 청중들이 이순신에 대해 진중한 관심을 갖게 될 때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 방성석 이사가 이순신리더십 강의를 하고 있다.

이 시대가 이순신 장군에게 꼭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은 글로벌 경쟁시대입니다. 우리의 역사, 우리의 문화, 우리의 자산으로 경쟁력을 갖출 때 글로벌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안보, 외교, 예술, 문화, 체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이순신이 실천하셨던 기록, 창조, 자립, 정보, 원칙, 인맥, 소통, 사랑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배워야할 롤 모델입니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必死則生 必生則死). ‘하면 된다.’는 도전의 정신, 한 사람이라도 길목을 지키면 천 명의 군사도 두렵지 않다(一夫當逕 足懼千夫).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정신입니다.

앞으로 연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포부를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 연구회는 지속적인 연구 활동으로 이순신의 정신과 리더십을 국민들에게 널리 전파할 것입니다. 이순신에 관심을 갖고 배우려는 사람들 뿐 아니라, 경제전쟁시대, 무한경쟁시대, 상시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순신의 ‘하면 된다.’는 필사즉생(必死則生)의 정신, 천명의 군사도 두렵지 않다는 족구천부(足懼千夫)의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정신을 심어줄 것입니다. 이는 세미나 및 연구 활동의 확장, 이순신을 배우려는 연구회원의 증강, 국제적으로 이순신을 선양하는 활동 등을 통해서 이루어 질 것입니다. 저희 연구회를 통해서 수많은 미래의 이순신을 탄생시키고, 외양만 빛나는 경제 강국이 아니라 법과 질서가 바로서는 문화강국, 선진일류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그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저작권자 © 컨슈머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