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노력으로 회계학 발전의 꽃을 피우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위대한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남다른 기질로 기술 하나만 배우고 익혀 큰 꿈을 이룬 경우가 많다. 이들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에 누구보다 열정을 가지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그 부가가치를 몇 배 이상 높인다. 특히 그들의 사상과 경영원칙, 기업관, 사회봉사활동 등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평생 동안 회계분야에 몸담아 온 고성삼 중앙대학교 명예교수는 수많은 업적을 세우며 회계학 발전의 꽃을 피운 인물이다. 기업자문에서 후진양성에 이르기까지 기업의 성장과 경제발전을 위한 토대를 만들어 온 그는 이 분야에서 명성이 자자하다.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으로 회계학을 택하다

오늘날 회계학에 큰 족적을 남긴 고 교수가 회계분야에 처음 발을 딛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부터이다. 선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재학 당시부터 회계분야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예전에 최고의 직장은 은행이었습니다. 저도 은행으로 취직을 할까 하다가 회계분야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적지 않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계속 공부를 해보라고 제안해주셨고, 그 분의 영향을 받아 회계분야에 몸담아야겠다고 결심을 굳히게 된 것이죠.”

어떻게 보면, 당시 최고의 인기 직장인 은행취직을 저버리고 공부를 시작한 것은 약간은 무모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 교수의 뛰어난 혜안과 근면 성실한 기질, 결심한 일에 대한 책임감이 합해져 한 분야의 최고가 되는 발판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의 혜안은 정확하게 적중한 셈이었다. 당시 공인회계사는 행시나 사시보다 시험이 더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다. 지금이야 공인회계사 합격자가 많이 나오지만, 고 교수가 공인회계사 시험을 통과했을 당시에는 전국에서 단지 2~30명만의 합격자가 나왔을 정도였던 것.

중앙대학교 경영대학 졸업 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회계학을 전공해 경영학 석사를 받은 그는 중앙대에서 모셨던 이상천 교수의 밑에서 실무를 배웠다.

“지금은 돌아가신 회계학계의 거두(巨頭) 이상천 교수님은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회계법인을 설립하셨는데, 저는 공인회계사에 합격하고 바로 이 교수님 밑에서 실무훈련을 받았습니다.”

훌륭한 스승 아래서 배운 실무훈련은 고 교수가 후배양성을 하는데 여러모로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고 교수는 실무경력을 쌓고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되며, 미국 Golden State University 경영학 전공, 경영학 박사(D.B.A), 인하대학교 대학원 회계학 전공, 경영학 박사(Ph.D),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어바나 삼페인) 국비 파견 교환교수,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교 교환교수 등의 학력을 쌓았다.

 

학자의 기질과 뛰어난 리더십으로 정평이 나다

고 교수는 2010년 2월 32년간 몸담았던 중앙대학교를 정년퇴임했다. 정년퇴임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요즘, 고 교수의 정년은 더욱 의미가 깊다. 그는 후배양성을 해달라는 중앙대학교 총장의 특명에 의해 1978년 중앙대학교에 부임하여 32년간 근속하며 학교의 역사와 같이 한 성장·발전의 주역이자 산증인이기 때문이다.

고 교수는 중앙대학교를 최고의 명성을 지닌 대학으로 변모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는 중앙대학교에서 회계학원론, 회계감사 및 세법개론 등을 강의하고 연구하면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었다. 중앙대학교에 부임한 후 예산실장과 산업교육원장직을 역임하였고, 회계연구소를 설립하여 퇴임 직전까지 소장을 역임하는 등, 이 분야에 몇 안 되는 전문가로서 중앙대학 뿐 아니라 우리나라 회계학 연구에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고 교수의 능력은 학회, 기업 및 정부에서의 활발한 활동으로도 이어졌다. 그는 (사)대한경영학회 회장과 (사)한국회계정보학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사)한국세무학회 부회장 △(사)한국회계학회 부회장 △(사)한국건설경영연구원 이사장 △(사)한국 납세자연합회 이사 △(사)한국원가관리협회 감사 등을 맡아 일하고 있다.

공공부문에서도 각종 회계·세무 관련 시험위원은 물론, 학교법인 서울신학대학교와 용인송담대학교 감사 △(재)은산문화재단 감사 △(사)한국대학부설 평생교육원협의회 부회장 △서울 지방국세청 세정 혁신위원회 위원 △국정홍보처 국민중앙 홍보위원회 위원 △한국 국제기아 대책기구 자문위원, 동작구청결산검사위원,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감사 등의 다양한 사회활동도 전개해왔다.

경영학 및 회계학의 대가로서의 고 교수의 진면목은 50여 편의 논문과 여러 권의 저서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회계학원론, 회계감사론 등의 저서는 수많은 회계학도들, 특히 공인회계사와 세무사 시험 등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필독서로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최신회계학 원론’, ‘세법의 이해’, ‘회계의 이해’, ‘최신 원가관리회계’ 등 원론서부터 ‘초보자를 위한 알기 쉬운 회계’ 등 일반 독자를 위해 이론을 쉽게 풀어 쓴 책까지 다양한 저서를 집필했다. 이처럼 경영학 및 회계학을 흥미 있게 이해하는 데 남다른 기여를 하게 된 것은, 폭넓은 인문학의 소양을 갖춘 고 교수의 노력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최고의 교육자의 길로 성공하다

2007년 5월 15일 스승의날에 전국 교수와 교원들을 대표하여 고성삼 교수는 홍조근정훈장(노무현 대통령)을 받았다. 앞서 고 교수는 2000년에 교육공로표창(부총리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받기도 했고 2014년 6월에 한국회계학회의 교육공로상과 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부터 회계와 감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공로표창을 수상한 것은 회계학과 더불어 국가 경영발전에 이바지해 온 고 교수가 최고의 교육자와 회계전문가로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에서 상의 경중을 떠나 값진 일이 아닐 수 없다.

장학사업에도 열정을 쏟다

뼈 속까지 교육자이자 학자인 그는 장학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인재양성을 위해 아낌없는 후원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고 교수는 2005년 회갑을 맞아 제자들과 함께 어려운 학생들을 돕기 위한 장학회를 설립했다. 현직 교수가 장학회를 설립해 매년 자비로 근간 연인원 30여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수여해 온 것은 교육계에 귀한 사례로 기록될 일이다.

“틈틈이 어려운 학생들을 도우면서 체계적으로 지원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에 좀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모색하다가 사회에 진출해 있는 제자 등과 함께 장학회를 설립하자는 뜻을 모았습니다.”

고 교수의 호를 따서 2005년에 설립된 봉암 장학회는 학기당 5~6명, 1년에 10여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해주고 있다. 지금까지는 중앙대 학생들 위주로 장학금이 전달되었는데, 앞으로는 중·고등학생들에게도 지원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 '2014대한민국소비자대상'에서 김영선 전의원에게 시상하는 고 교수

사회문제에 ‘쓴 소리’를 하다

고 교수는 그동안 물가 변동과 재무제표 수정, 외화환산회계, 사립대학의 재정 합리화 방안, 한국 공인회계사 제도 개선, 중소기업 조세 지원 제도 개선 등에 대해 연구해 왔다.

회계는 기업과 기업을 둘러싼 외부 이해관계자간의 교량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기업경영의 언어라 할 수 있다. 학자의 길을 걸어오면서도 실질적으로 기업 경영 등에 직접적인 자문 역할을 해 온 그는, 이 사회의 잘못된 문제들에 거침없는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방채와 지방자치단체의 신용평가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한 바도 있는 고 교수는, 최근 심각하게 불거져 나오고 있는 지자체의 운영실태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지방채가 국가 경영문제로 나오게 된 근본적인 원인에는 행정을 하는데 있어 평가가 제대로 안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정치인이라는 입장보다 지역을 운영하는 경영자의 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행정을 집행하기 전에 이를 확실히 평가 할 수 있는 대책과 제도가 확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고 교수는 경제사범 사면과 관련해서도 개탄의 목소리를 냈다.

“최근에도 재벌기업 등의 비자금 문제가 터져 나오고 수감 중인 기업가들의 가석방, 사면 등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해외에서도 좋지 못한 사례라고 지적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계속 사면을 해주니까 경영인들이 반성도 없이 또 다시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경영인들을 계도할 수 있는 지도·감사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 장로 추대식

선교활동에 뜻을 품다

서울 상도동에 태어난 서울 토박이인 그는, 어려서부터 상도성결교회에 출석하며 독실한 기독교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교회 장로인 고 교수는 학생들을 꾸준히 전도해왔다. 인품 뛰어난 사람에게는 많은 이들이 뒤를 따르듯, 고 교수의 근면성실하고 열정이 넘치는 면모와 인자한 성품은 자연스럽게 사람을 모여들게 만든 것. 그는 열정적인 전도와 선교활동으로 2007년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 표창과 함께 2008년도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전국장로회 모범 장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내 이름이 고 성삼(聖三) 아닙니까. 성스러울 성에, 석 삼자. 성삼위일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선교활동은 저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죠.”

최근에는 좀 더 활발한 선교활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신학공부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고 교수는, 국내 및 해외 선교에도 뜻을 품고 있다. 고 교수만큼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아내 역시 그와 뜻을 같이해 선교활동을 함께 전개하고 있다.

▲ 가족과 함께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는 안정된 가정을 가지고 있듯, 고 교수는 학내외적으로 성공하였을 뿐 아니라 가정적으로도 축복 받았다. 자신과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아내를 둬 노년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음은 물론, 슬하에 1남 2녀를 두어 화목한 가정을 이뤘다. 무엇보다 3남매 모두 성공하여 사회에 큰 인재로 인정받고 있으며, 막내아들의 경우는 아버지와 같은 공인회계사의 길을 걸으며 최근에는 미국 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정년퇴임 후에도 열정적으로 중앙세무회계사무소를 설립운영하며, 또한 계속적으로 대학원에서 강의는 물론 여러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고성삼 교수는 아직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말한다. 이제는 좀 쉬어도 좋지 않겠는가 라는 질문에 “바쁘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너털웃음을 짓는 건강한 모습에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짐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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