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관이 설립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한국문학의 산실로 자리 잡은 `문학의 집·서울`. 거기에는 김후란 이사장이 있다.서울 남산자락에 위치한 `문학의 집·서울`의 정원은 요즘 싱그러운 녹음이 한창이다. 서울의 중심부인 예장동에 있으면서 새소리와 벌레소리 이외에는 자동차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처럼 조용한 문화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문학의 집에는 시민 누구나 환영한다는 뜻으로 대문이 없다. 주변에 이븐 쌈지공원도 있다. 내부시설로는 전시실, 세미나실, 대회의실, 영상실, 컴퓨터실 등이 있어 자체행사도 하지만, 문학관련의 크고 작은 행사장으로도 대여하고 있다. 그중에도 전망 좋은 이층 사랑방은 모든 문인들의 환담장소로 알려져 있다.

 서울시의 도움과 유한킴벌리의 지원으로 서울에 `문학의 집·서울`이 개관된 것은 2001년 10월26일로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개관당시 국민들 기억 속에 처절하게 무섭고, 아픈 곳으로 기억된 남산의 안기부 자리에 문학의 집이 개관한다는 것에언론은 물론 시민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아울러 제대로 변변하게 자리 잡지 못한 `한국의 문학관`이 없어 아쉬운 차에 이런 문학의 집이 생겨났다는 것은 문학인과 시민들에게 큰 신선함과 기대를 안겨주었다.그 기대에 김 이사장은 적극 부응했다.

 실제로 각종 문화행사가 매주 한두차레씩은 열리고 있고 문학인의 체취가 베인 전시회도 계속 되고 있으니 그간에 오간 참가인원의 수도 미루어 짐작이 될 것이다.정기행사로는 월1회 수요일 3시에는 시민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문인을 초청하는 `수요광장`이 있고 금요일 저녁 6시에는 `시와 음악이 있는 문학마당`이 있어 그날의 시인의 시가 낭송되고 문학적 조명이 있고 시·가곡을 성악가가 부르는 입체적인 행사가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행사의 연장으로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전당 등에서 신작가곡음악회 `우리 시 우리 노래`는 시인과 작곡가와 연주자들이 힘을 합쳐서 새로운 가곡을 창작하여 연주회를 가지고 있다. 아름다운 우리가곡이 많지만더욱 새로운 창작가곡을 사회에 음악계에 널리 선보이고 널리 불리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국에술가곡진흥위원회가 주관하고 문학의 집·서울과 유한킴벌리가 공동 주최하는 큰 행사였다.

 이날 2천여 명의 청중이 참석하는성황을 이루었던 것이 감격스럽다고 김후란 이사장은 말한다. 이 행사는 해마다 년 1회 공연을 계속하고 있다.`문학의 집·서울`의 개관에 대해 김 이사장은 "지난 2001년도에 개관했지만 창설과정에 직접 참여하면서 1년여 준비과정이 있었다. 그동안 문인들이 갈 곳이 없는 차에 개관을 하게 되어 문인들이 좋아해서 보람을 느낀다. `자연을 사랑하는 문학의 집·서울은 창립할 때 내가 지은 이름이다.

 당시에 생명의 숲 국민운동본 대표의 한사람으로 있었고 자연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연을 존중하고 생명성을 소중히 한다는 마음인데, 문학도 같은 맥락이다. 생명과 자연과 문학이 어우러질 때 거기에서 아름다운 삶을 기대할 수 있었다"`문학의 집·서울`이 목적하는 바에 대해 김후란 이사장은 "문학인들의 활동무대가 각자의 서재에서 벗어나 시민들과 만남의 자리로 확대되어지는데 있으며, 이로서 문학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 자리를 편안하게 펼쳐 문인들도 시민들도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문화공간이 되어 지 는데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뜻을 이어가기 위해 청소년 문학제, 가족백일장, 자연사랑문학제, 예장 문화콘서트, 시민시낭송경연대회, 서울문학인대회 등이 다양하게 펼쳐져 남산자락에서 번져가고 있다.문학의 향기, 남산자락에 번져문학인의 역할에 대해 김 이사장은 "문화인구의 저변 확산은 문화국가를 지향하는 이 시대의 지표요 흐름이어서 정녕 문학인들이 역할이 요구되며 문학정신의 확산을 위해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문화민족으로서 긍지와 체질화는 위에서 어떤 계도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저변에서부터 문화를 호흡하려는 시민들의 기대와 희망이 있음으로써 가능하다. 문학의 집이 가지는 사명감 같은 것도 이를테면 우리역사상 전통이 되어 있는 선비기질을 바탕으로 문화민족으로서의 자긍심위에 보다 활성화된 문학애호가들을 많이 손잡고 나가고자 하는데 있다"고 강조했다.

 문학과 문학인에 대해 김 이사장은 " 문학작품은 인생을 알게 하고 정서생활과 삶의 질을 높여주는 정신적 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살아가면서 겪는 다양한 경험세계가 인간을 성숙시키기도 하고 좌절하게 하지만 , 좋은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남의 인생을 이해하게 되고 인간생활의 진실과 진정성에 대해 깨우침을 갖는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정신적 작용과 경험세계의 확충은 인간생활의 폭 넒은 아름다움과 생명의 존귀함을 깨우침으로서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다.

 문학인은 `문학이라는창작`을 통해서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는 없을지라도 적어도 읽는 이의 가슴에 울림이 있고 생각의 물살을 일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한다. 하나의 문학작품은 언어로 지어진 집이다. 문자 힘으로 생명이 꿈틀대는 그 집에 들어서면 혼자만의 경험세계를 초월하는 확대된 인생경험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나는 마음속으로 외친다. `시를 읽자, 시를 먹자, 가슴속에 꽃 피우자`고. 그래서 나는 외롭지 않을 수 있다"시, 고난 한 삶을 꽃으로 승화시를 쓴다는 것에 대해 김 이사장은 "시라는 문학의 형태는 가장 적은 말로 깊고 큰 세계를 열어 보임으로써 읽는 이에게 새로운 경험을 알게 하고 공감하는 문학이다.

  시는 그리움의 소산이다. 날마다 새롭고 날마다 그립다. 모든 시인은 외롭다. 외로움을 병으로 껴안고 살면서 어느 선현의 말씀처럼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고 한 송이 꽃에서 세상을 보면서 산다.나는 이것을 `이슬을 진주로 만드는 일`에 비교한다. 이슬은 새벽 한때 영롱하게빛나는 자연의 보석이다. 그러나 햇살이 닿으면 스러져 버린다. 그 유한성을 극복한 생명으로서의 진주라는 보석으로 형상화하는 일이 시의 창작에 해당한다"면서 "시는 고통이 아니라 고민에 속하는 과업이요 숙명"이라 말한다.

  다시 문학의 집·서울 이사장으로서 그는 " 서울시가 문화정책을 표방, 지하철 뿐 만 아니라 시내에 시를 설치해 놓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시가 흐르는 서울` 선정위원장으로서 서울시 정책에 감사를 표한다. 다만 아직도우리나라에는 한국문학관이 없다. 그 역할을 서울시가 해주었으면 한다.

 한국문학박물관, 도서관을 건립되어 보다 많은 이야기가 후손이나 외국인들에게 전해질 때 한국은 보다 성숙된 선진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일을 할 수 있는 곳은 서울시 밖에 없다`고 바램을 나타낸다.그는 "문학은 이제 혼자만의 몰입된 독서뿐 아니라 보다 입체적인 자극이 기대되며 문학이 다른 예술과 접목되어 다양하게 새로운 빛깔이 창출될 수 있는 시도가 가능하리라 본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의 집`이나 `문학관` 등은 문학을 더욱 아름답게 꽃피우려는 문학인들과 문학을 사랑하는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이다. 또한 우리고유의 문화유산과 역사를 가진 국민으로서 긍지와 자존의 터전이다"면서 "많은 문학인과 시민들에게 더욱 사랑받을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서 그 역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김후란 시인 "누군가에게 기쁨주고 애송하게 하는 시를 쓰고 싶다"김후란 이사장은 시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현대문학지에 오늘을 위한 노래가 제1회 추천작으로 실렸다. 1959년의 일이다. 한국일보 기자때 바라춤 역작을 쓰셨던 신석초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하게 됐다.어릴 때부터 교육자가되고 싶었고 그래서 부산사범학교에서 서울대 사대로 진학을 했다. 그때 김남조 교수님의 사랑을 많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한국일보 기자가 되었고 문화부장으로 계시던 신석초 시인을 만나 문학의 길로 본격적으로 들어선다.선생은 가정교육이 인생에 있어 중요작용을 했다고 한다. 공무원인 아버지와 조용한 성품의 어머니 슬하에서 딸 셋, 아들 넷, 7남매의 셋째 딸로 자랐다. 부모님은 저녁이면 형제들을 모여 놓고 달리기도 시키고 노래자랑이나 글짓기도 시켰다. 그때 `자장가`라는 제목으로 가족백일장을 했는데 선생의 동시가 뽑혀 가족들 앞에서 낭독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고 했다.

 이후 여학교 시절부터 운명처럼 문학으로 인생의 가닥을 잡았고 선생은 그 길을 거부하지않았다. 1963년 여성시인들만의 청미靑眉 동인회도 결성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고, 이 동인활동은 35주년 때 그간의 수록 작품을 전집으로 총 정리를 한 후 지금은 우정의 모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인회 면면을 보면 김혜숙, 김선영, 김후란, 이경희, 임성숙, 추영수, 허영자 시인 등 7명이다. 우리문단사상 최장수 동인활동인 청미회는 서로가 성숙해가는 문학적인 동력이 되었다고 선생은 말한다.지난해 선생은 50여년 문학생활에 10권의 시집을 상재하였다.

 시로써 소화하지 못한 정력을 적지 않은 산문집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선생의 본령은 시를 쓰는 시인으로 만족해한다.지난 1968년에 첫 시집 장도와 장미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할 때까지 현대문학상을 받은 여성문인은 박경리 소설가와 김후란 시인 둘 뿐이었다. 선생은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문단 안팎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시인으로서 본령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추천시인 신석초에 의해 `점액성의 知性``으로 불린 그의 데뷔는 이후 미와 미소, 사랑과 평화, 생명과 구원 등의 미학을 구축해왔다.지난해 봄에 10번째 따듯한 가족이라는 시집을 냈다. 이에 대해 선생은 근자에 와서 우리인생에 가족만큼 소중한 게 없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한다. 사회구성체인 가장 기본단위인 가장이 행복해져서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야 우리사회도 행복하다는, 가족의 소중함에 대한 새삼스러운 깨달음의 표현이라 말한다.

 

< 김후란 >시인. 1934년 서울출생/서울대사대 가정교육과 수료/한국일보, 서울신문, 경향신문 기자 및 부산일보 논설위원/제2대 한국여성개발원 원장/제6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위원회 여성개발부문 위원장/국무총리실 여성정책심의위원회 위원/공연윤리위원회 윤리위원/민간방송설립추진위원회 자문위원장/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문화방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1959년 현대문학지로 등단/1988년~현재 최은희여기지상 심사위원장/1998년~현재 생명의 숲 국민운동 이사장/2004년~현재 한국문학관협회 회장 2001년 현재 (사)자연을 사랑하는 문학의 집·서울 이사장/2009년 예술원 회원

 저서=시집 장도와 장미 어떤 파도 서울의 새벽 세종대왕 따뜻한 가족 등 10권 수필집 영혼의 불을 켜고 혼자서도 혼자가 아닌 너 등 다수

 수상: 현대문학상, 월탄문학상,한국문학상,서울시문화상,비추미 여성대상 등

 수훈: 국민훈장 모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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