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성악가의 활약, 차후 서울시향 니벨룽의 반지 공연의 숙제로 남아”

위풍당당 발퀴레의 함성의 잔향이 아직도 귀에 남아있는 듯한 서울시향의 바그너 시리즈 두번째 무대 ‘발퀴레’는 ‘니벨룽의 반지’ 접근의 문턱을 상당히 낮춘 점에서 큰 점수를 받을 만 하다.

5월 20일 저녁 7시부터 장장 4시간 25분간 이어진 서울시향 ‘발퀴레’는 독일어 원어 공연을 이해할 국내 관객이 많이 없는 점을 감안한 매끄러운 한글 자막 번역이 이런 문턱을 낮추는데 큰 기여를 했다. 2014년 9월 서울시향의 ‘라인의 황금’이 이 땅의 역량으로 내딛는 ‘반지’의 역사를 개시하는데 많은 청중이 동참한 탓인지 바그너의 악극을 감상하는 관객의 감상태도도 많이 성숙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으며 발퀴레를 4시간 반에 걸쳐 봤다는 뿌듯함이 공연이 끝나자 여기저기 관객들의 표정에서 묻어났다.

관능적인 사랑의 2중창을 펼치면서 쌍둥이 남매임을 깨닫게 되는 지그문트와 지글린데의 포옹 입맞춤으로 1막의 마무리 역시 발퀴레 전체 공연을 통해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으로 꼽을 만 하다. (사진: 서울시향)

서울시향의 ‘니벨룽의 반지’ 시리즈는 이번 ‘발퀴레’에서도 주역 가수들을 헨덴테노르 (영웅적 테너) 테너 사이먼 오닐, 지글린데역에 소프라노 셀레스테 시실리아노, 보탄역에 베이스 바리톤 에길스 실린스등 외국 가수들의 성악에 의존, 차후 니벨룽의 반지 공연의 숙제를 남겼다. 이미 유럽과 미국에서 바그너 가수로 검증된 세계적 배역진들이 우리 무대에서 최고의 공연을 펼치는 것도 국내 공연사 발전을 위해 자양분이 되겠지만 앞으로 바그너를 제대로 불러낼 수 있는 한국인 성악가의 층을 두텁게 만들어 나가는 것은 더욱 중요한 문제로 평자들에게서 지적돼왔기 때문이다.

우리 가수들이 중요한 배역에 이름을 올릴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희망한 평자들의 뜻이 단번에 최고의 완성도를 목표로 할 것이 아니라 몇 년 후에는 더 많은 기대를 가져도 좋은 가능성을 보여달라는 뜻이었음에 비춰 2007년 7월 20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크리스티앙 텔레만과 발퀴레에서 훈딩역으로 출연, 힘있는 톤을 들려준 연광철이나 바그너의 지그프리트중 나그네로 변장한 보탄역을 소화한 바이로이트 바그너 페스티벌의 주역 사무엘 윤 같은 한국계 바그너 가수의 활약들이 서울시향 ‘발퀴레’ 무대에서 아쉬웠다.

물론 이번 서울시향의 ‘발퀴레’ 무대에서 세계 무대에서 정교한 헬덴테노르로 입지를 구축해온 지그문트 역의 테너 사이먼 오닐은 압권으로 볼 수 있을 만큼의 대사 보는 것에 얽매이지 않는 마치 오페라 무대를 방불케하는 자연스런 연기로 1막의 스포트라이트였다. 그대는 나의 봄(du bist der Lenz)을 열창하는 지글린데 역의 소프라노 셀레스테 시실리아노의 가창도 인상적이었고 관능적인 사랑의 2중창을 펼치면서 쌍둥이 남매임을 깨닫게 되는 지그문트와 지글린데의 포옹 입맞춤으로 1막의 마무리 역시 발퀴레 전체 공연을 통해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으로 꼽을 만 하다.

보탄역을 맡은 베이스 바리톤의 에길스 실린스의 노래로 시작한 2막에선 브륀헬데 역의 소프라노 이름가르트 빌스마이어의 탁트인 성량이 확 눈에 들어왔다.  2막에서도 발퀴레 전체를 통해 라이트모티브로 작용하는 금관악기의 강력한 위용과 소용돌이치는 반주음형이 더해져 마치 포효하는 듯한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음향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일반 오페라 관객에게 발퀴레 하면 ‘발퀴레의 기행’(Ride Of The Valkyries) 연주를 가장 먼저 떠올릴 만큼 ‘발퀴레의 기행’ 선율이 ‘니벨룽의 반지’ 발퀴레의 전체를 관통하는 선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님을 보여주는 듯 했다.

이번 서울시향 발퀴레 공연은 ‘발퀴레의 기행’ 선율에 대한 재확인을 넘어 ‘그대는 봄이다 (du bist der Lenz)’, ‘겨울 폭풍이 기쁨의 달을 기울게 하네(Winterstuerme wichen dem Wonnemond)’, ‘아버지가 검을 약속했는데 (Ein Schwert verhiess mir der Vater)’ 같은 발퀴레 공연중의 다른 베스트 아리아들에 대한 맛을 다시금 느끼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하지만 3막을 여는 이런 인상적인 발퀴레의 기행 연주 이후에 국내 소프라노와 메조 소프라노들이 등장한 “호요토호! 호요토호! 하이야하!”의 여섯 및 여덟명 발퀴레들의 합창은 발퀴네 공연의  주역 부분에서 우리 가수들이 부재하는 것에 대한 간접적인 징표가 된듯해서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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