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방송교향악단은 베를린필의 연주력을 넘을 수 없는 것인가

지금으로부터 20년전인 1995년 1월부터 두달간 베를린에 체류한 적이 있다. 이때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상임지휘자로 있던 베를린필의 필하모니홀과 동베를린의 샤우스필하우스의 교향악단 연주에 자주 갔었다.

지난주 3월 13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었던 베를린방송교향악단(Rundfunk-Sinfonieorchestra Berlin)의 내한연주는 관객의 박수를 기립해서 받는 단원들의 입장으로 시작, 진중한 이미지의 마렉 야노프스키(Marek Janowski) 지휘로 베버의 ‘오베론’ 서곡부터 안정된 앙상블의 조화가 초반 다소 흥분을 불러일으키면서 야노프스키에선 27년전 베버의 오베론서곡등으로 내한공연을 가졌던 마르크 에름레르의 향기가 났다. 이어 프랑크 페터 침머만의 시벨리우스 바이올린협주곡도 협연자의 카덴차가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를 압도하는 연주력과 시벨리우스의 북구적 향취가 묻어났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협주곡을 통해 협연자의 카덴차가 돋보인 프랑크 페터 침머만(좌측)의 베를린방송교향악단과의 협연 장면. (사진: 빈체로)

악단이 협연자의 조력이 되는 협연곡과 달리 오케스트라의 전적인 연주력이 가감없이 드러날 브람스 교향곡 2번 메인곡에서 베를린방송교향악단은 독일 사운드의 깊이와 야노프스키의 정확한 비팅이 어우러지며 1급악단으로서의 긴장을 보여주는듯 했다. 그러나 전체적 연주 앙상블 측면에서 특유의 깊은 음향이 강점인 베를린필의 아성(牙城)은 넘을 수 없는 것인가 하는 느낌을 갖도록 연초 서울에서의 대형 오케스트라의 첫 공연이란 기대치곤 풍부한 목관 악기로 온화한 선율이 가득하면서 브람스의 전원교향곡을 들려줘야함에도 다소 미흡한 사운드를 보여 공연이 끝나고 나서 다소 별로였다는 관객의 반응이 나왔다. 앵콜로 들려준 'Richard Wagner: Die Meistersinger von Nuernberg의 Vorspiel 3. Akt'가 베를린방송교향악단과 바그너 오페라 주요 작품을 레코딩한 야노프스키의 오페라와 관현악 양면에 두루 능통한 실력파 지휘자라는 사실을 일깨우게 했다.

모 일간지의 기대치에서 별 네개의 평가로 큰 기대는 않했지만 보수적인 독일 전통의 음색속에서도 매끈함과 기능적 완성도를 갖춘 ‘일류중의 일류’ 교향악단으로 꼽히며 뚜렷한 색깔과 예술성을 자랑해왔다는 것과는 달리 독일 관현악의 격전지 베를린에서 각축을 벌이는 여러 일류 교향악단의 위상에는 다소 처지는 연주력은 아닌가하는 느낌이었다. 반면 다음날 있었던 서울시향의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는 어떤 면에선 유행에 맞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젊은 이스라엘의 지휘 라하브 샤니의 암보에 의한 인상적 지휘 및 보헤미안 선율의 조화를 돋보이게 하는 서울시향의 인상적 연주로 서울시향의 4월에 예정돼있던 산타바바라, 로스앤젤레스, 데이비스,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앤아버, 시카고등의 북미투어가 취소된 것이 못내 아쉬울 정도였다. 평자들의 시각에 따라선 서울시향의 보헤미안 선율의 조화가 베를린방송교향악단의 브람스 교향곡 2번의 연주력을 압도했다고 할 수도 있을 인상적인 것이어서 세계 무대에서 날개짓을 못하게 된 서울시향의 행보가 안스러울 수 밖에 없다.

다음주 3월 25-26일에는 7년전 2008년 12월 두차례의 서울과 성남에서의 볼리바르유스오케스트라와의 내한공연을 통해 번스타인의 심포닉 댄스와 맘보등의 흥겨운 한바탕 파티의 연주의 향연을 펼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구스타보 두다멜과 LA필이 또 한번의 드로브자크의 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와 말러교향곡 6번 ‘비극적’을 연주할 채비로 ‘이것은 기적이다’를 재연할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 본토 악단의 한 축으로 볼 수 있을 LA필이 두다멜과 드보르자크가 미국 체류시절 작곡한 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를 본토 악단의 진용으로 과연 어떤 사운드로 들려주게 될지, 서울시향과의 연주와는 또 어떻게 다른가를 지켜보는 것도 국내 악단의 세계적 연주력 수준을 가늠해볼 흥미로운 일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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