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들은 그간 금융회사에 적잖은 ‘봉’노릇을 해왔다. 예컨대, 보험을 조기 해약하면 소비자들은 해약환급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거나 쥐꼬리만큼 받아 왔다. 소비자들의 이런 일상화된 불리함은 금감원이 금융회사의 경영 건전성에 치중한 결과다.

며칠 전 한국금융센터가 주최한 정책포럼에서 김석동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영 건전성에 대한 감독에 치중하면서 금융정책에서 금융소비자보호가 주요 목표로 설정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금감원도 경영 건전성 검사에 치중하면서 금융소비자보호업무가 소홀히 다뤄졌다고 지적했다. 금융회사들 역시 경영 건전성에 몰입되어 소비자 보호를 뒷전으로 미뤘다. 이러한 가운데 금감원이나 금융회사에 대한 소비자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다행히 요즘 학계와 정치권 모두 금융소비자보호 논의가 한창이다. 금융감독원을 경영 건전성 감독과 금융소비자보호 기능으로 나누어 소비자보호를 강화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금감원이 그동안 소비자보호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최근 민주통합당 김기준 의원도 ‘금융소비자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발의하였다. 김 의원은 “금융위가 정책의 무게중심을 금융 산업 육성 쪽으로 이동한 결과 금융소비자가 금융 산업 성장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제 금융소비자피해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책임이 금감위, 금감원에게만 있는 것일까? 금융소비자가가 금융 산업성장의 희생양이 되는 동안 소비자기본법에 의거 소비자권익을 책임진 공정거래위원회는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 봐야 된다.

금융소비자위원회와 금융소비자보호원을 따로 설립하기 전에 도대체 소비자정책을 총괄하는 공정위와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인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을 놔두고 향후 모든 품목과 서비스 분야마다 소비자분쟁조정기구를 계속 추가할 것인가? 그동안 공정위와 소분위의 권한과 기능이 문제였다면 현행법과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 순리이다.

부처별로 담당 품목이나 서비스피해에 대한 사후구제 업무를 따로 추진하는 것은 공정성은 물론 경제성에도 문제가 있다. 인력과 예산을 부처별로 추가할 경우 국가 재정 운영상 낭비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일본과 미국도 소비자보호청을 두고 전담시키고 있다. 품목별로 여기 저기 찾아다니며 권리를 구제받아야 하는 소비자 불편과 혼란도 생각해야 된다.

차기 정부는 국가 재정지출은 최소화하면서 금융소비자피해의 사전예방과 사후구제 업무를 효과적으로 추진하는 스마트한 정부가 되었으면 한다. 작은 정부이면서도 금융소비자가 더 이상 금융 산업성장의 희생양이나 ‘봉’이 되지 않는 소비자행정 강국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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