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광복70주년 경복궁에서 '민심은 천심' 민초들의 새로운 항일운동이 시작되다

【수도권/seoulcity】안홍필 기자 = 1919. 3. 1 대한독립 만세! “저항의식을 대변한 노래 아리랑”은 일제 강점기 시기에 광복을 위해 희생한 “민족의 투사들이 독립을 위한 입에서, 탄압의 시련을 견디다 지친 민초들의 입으로 전 국토”에 울려퍼진 노래이다. 역사적으로 아리랑은 1880년대 이후(1883년경 미국인 헐버트의 1996년 기록)부터 민요 속에 등장한다.

헐버트의 기록에 의하면 아리랑이 한국인에게 있어 마치 그들의 식생활에서 쌀이 차지하는 것과 같은 비중이며 다른 것들은 주변적인 노래일 뿐이다. 그래서 아리랑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노래라고 했다.

 

조선 말기 조선인들은 동학의 영향으로 시민의식이 깨어났고, 그 깨어난 조선인들이 자신들의 자부심을 담아 스스로를 표현한 말이 바로 아리랑(我理郞)이라고 전하고 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민요의 하나인 <아리랑> 후렴이 들어 있는 구전민요이며 가장 널리 애창되는 노래이다. 아리랑은 대체로 3음보와 세마치장단으로 이루어진 서정민요이며 시 형식은 2행시로 되어 있어 간결하며 특정한 생활상의 기능을 가진 민요는 아니지만 민중생활의 순간순간의 비애와 애환을 반영하고 있다. 조선 말기 이후부터 일제강점기에는 제국주의에 항거하여 민족적 감정과 울분을 호소하였고 동질성을 강조하는 근대 민요의 역할을 했다.

당시의 조선인들은 명분이 곧 힘이라 알고 살아 왔으나 서양인들은 이를 무시하고 명분도 없이 국가 간 힘을 수단으로 이용 국제사회의 묵인 하에 무차별적인 침략이 자행되고 있었다. 이런 힘의 침략은 조선인들에 두려움을 주었고 이로 인하여 조선인들이 스스로 깨어나 경각심을 가지고 대응하자는 동학운동인 최제우의 난이 시작된다.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 백성들의 마음이 하늘의 마음이며 백성(百姓)을 하늘(天)과 같이 모시는 것(侍)이 天理이고 백성의 뜻에 따르는 것이 천리순응(天理順應)이란 말이 민초들에 의해 널리 퍼지기 시작하였으니 조선의 왕실이나 정권을 잡은 실세들의 입장과 성리학적 입장에서 동학교도들을 보면, 하늘의 뜻을 지상에 구현하는 역할을 맡은 기존의 정치인들의 자격을 부정하고 일개 백성인 자들이 직접 자신들이 하늘이니 자신들의 뜻에 따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아 그들의 뜻을 받아들이려면 자신들의 무능함과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인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니 동학교도들을 반란세력으로 규정하고 탄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 자명하다.

1876년 개항이후부터 점차적으로 탄압이 약화되어 아리랑이 유행을 시작하는 1883년경 즈음에는 다시 공공연히 울려퍼지게 된다. 이러한 격동기인 조선 말기 밀려오는 외세에 대한 상황을 백성들은 우려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민심을 반영하지도 못하고 있는 정치에 대해 불만을 갖고 '민신은 천심'임을 강조하면서 백성들이 스스로 정치에 참여하여 정치를 개혁하고자 하는 시민의식에서 나온 말이 바로 아리랑(我理郞)이다.

 

아리랑의 성립시기에 대한 여러 설이 제기되고 있지만 크게 고대에 성립되었다고 보는 설과 대원군 시대에 성립되었다고 보는 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아리랑은 고대에 성립되어 차츰 변형이 이루어져 대원군 시대에 들어와 경복궁 공사를 위한 가렴주구가 얽혀서 여러 변이형이 생기고 내용상에도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아리랑의 대표적 어휘인 <아리랑>에 대해서도 그 유래에 관한 많은 논란이 있다.

아랑설(阿娘說)·알영설(閼英說)·알영고개설을 비롯하여 대원군시대를 유래의 시점으로 보는 아이롱설(我耳聾說)·아난리설(我難離說)·아리랑설(我離娘說)·아랑위설(兒郞偉說) 등이 있다.

이러한 설들은 아리랑이라는 말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전제하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그러나 《닐늬리》 《청산별곡》 《군마대왕(軍馬大王)》의 후렴구처럼 아리랑도 관악기의 구음(口音)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유래된 것으로 보는 것이 보다 일반적인 설이다.

아직까지 <아리랑>의 의미와 유래에 대한 그 당시 기록에서 아리랑을 문화로 하는 어떤 사건이나 행사 등 직접적인 증거를 찾아볼 수는 없다.

이렇듯 “아리랑이 언제 어디서부터 우리 민족의 노래”로 불리어 졌는지 명확하지는 않으나 우리 국민 누구나가 언제 어디서든 ‘즐거울 때나 슬플 때’를 가리지 않고 불러온 노래로 민중의 심리를 대변하는 노래로 때로는 ‘항일운동에서처럼 저항을 위한 노래’로 입에서 입으로 불리어지는 우리민족 마음에서 제2의 애국가와 같은 노래로 앞으로도 영원히 불리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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