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을 하고 소일거리를 하며 여생을 보내던 전직 교장 선생님이 있었다.
하루는 선생님이 평소와 다름없이 집안의 허드렛일을 마치고 산책을 하는데 낯익은 동네 꼬마 아이가 공터에서 혼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선생님은 그 아이에게 다가가 자상하게 물었다.
“아가야, 무슨 일이 있니? 무슨 일인데 그리 울고 있니? 엄마한테 혼이라도 난 거야?”선생님의 물음에도 꼬마는 눈물을 그칠 줄 몰랐다.
선생님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아이의 눈물과 콧물을 닦아주자 아이는 겨우 말문을 열었다.
“교장 선생님, 아이들이 우리 아빠를 패배자라고 놀렸어요. 우리 아빠는 남들처럼 많이 배우지도 못하고 남들처럼 좋은 직업도 가지지 못했고 또 남들처럼 많은 돈도 없으니까 패배자래요. 제가 생각해봐도 아빠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럼 우리 아빠가 정말 패배자인가요?”꼬맹이의 당돌한 질문에 선생님은 쉽게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대신 아이를 다독여 달랜 후 아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아가, 할아버지하고 재미난 놀이 하나 해볼까? 요즘은 이런 놀이를 하지 않지만 할아버지 어릴적에는 자주 하고 놀았단다. 아주 재미있는 놀인데 한번 해보지 않을래?”
놀이란 말에 아이는 금세 눈물을 멈추곤 고개를 끄떡였다.
교장 선생님은 아이 앞에 편한 자세로 마주앉아 주위에 있는 모래를 모아 제법 큰 흙더미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곧은 나무 가지 하나를 주워 흙더미 중간 깊숙이 꽂았다.
“아가, 이 놀이는 너와 내가 번갈아가며 여기 있는 모래를 자기 것으로 만들면 되는 거란다. 그런데 여기 꽂힌 깃발을 쓰러뜨리면 그 사람이 지는 거야.”
선생님은 아이에게 놀이의 규칙을 설명해준 후, 아이와 가위바위보로 선공을 결정하였다. 이긴 선생님이 먼저 흙더미의 모래를 자신 쪽으로 가져갔다.
선생님이 처음부터 흙더미의 반 가까이 되는 모래를 가져가자 깃발은 위태롭게 보였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아이는 흙더미가 쓰러질까봐 약간의 모래만 자신 쪽으로 가져갔다.
그러나 선생님은 깃발에는 아랑곳없이 아이 편에 있는 모래까지 듬뿍 자신 쪽으로 가져갔다. 그래도 여전히 깃발은 쓰러지지 않았다.
그럴수록 아이는 깃발이 쓰러질까봐 약간의 모래만 자신 쪽으로 가져갈 뿐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여전히 깃발에는 신경 쓰지 않은 채 많은 양의 모래를 가져가려다 그만 깃발을 쓰러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아이는 까르르 웃으며 어리석은 선생님을 놀렸다.
“교장 선생님은 바보네요. 그렇게 많은 모래를 가져가려고 욕심을 부리니까 깃발이 쓰러지잖아요.”아이의 놀림에 선생님은 쑥스러운 듯 웃어보였다.
그리곤 웃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아가, 인생이란 놀이는 말이다. 누가 모래를 많이 모으는가를 겨루는 놀이가 아니라 누가 깃발을 쓰러뜨리지 않는가를 겨루는 놀이란다.”

그렇습니다. 모래를 많이 가졌다고 꼭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모래를 적게 가졌다고 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깃발을 쓰러뜨리지 않는 이가 승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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