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에 태어날 때부터 가난하게 태어나 평생 빌어먹고 살아온 거지가 있었다. 그는 거지의 자식으로 태어나 거지로 자랐기에 빌어먹고 사는 것을 자신의 숙명으로 알고 살았다. 그래서 그 거지는 항상 느긋한 마음으로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자신이 필요한 만큼만 구걸하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어느 해 그 나라에 큰 흉년이 들어 거지도 끼니를 구걸하기 매우 힘이 들었다.
며칠을 굶은 거지는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부잣집에서는 먹을 것을 나누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돈이 많기도 소문난 한 부자의 집으로 구걸을 하기 위해 찾아갔다.
거지는 무작정 그 문을 두드리며 사정하기 시작했다.
“나으리, 며칠을 굶었습니다. 제발 저에게 식은 밥 한 덩어리만 적선하십시오.”
문 앞에서 꾀죄죄한 행색의 거지가 푸념 섞인 구걸을 하자 하인이 얼른 밖으로 나오더니 거지를 나무랐다.
“염치없는 거지 녀석아, 저리 물러나거라! 지금 이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식전바람부터 구걸을 하러 온 게야? 썩 물러나거라!”
하인은 당장이라도 거지를 칠 기세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으리, 며칠 간 굶어서 그러하옵니다. 제발 찬밥 한 덩어리만 적선해주십시오.”
거지는 하인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그 소매 자락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러자 하인은 들고 있던 몽둥이로 거지를 때리며 크게 소리쳤다.
“네 녀석이 얻어맞아야 말을 알아듣겠구나. 이 집 도련님께서 임금님께 바칠 비단 천 필을 잃어버렸다. 내일까지 비단을 구하지 못하면 큰 벌을 당할 형편인데, 네놈이 이런 집에 와서 구걸을 해! 에라, 이 도리도 모르는 거렁뱅이야, 어디 배부르게 몽둥이 찜질이나 당해봐라.”
거지는 모질게 얻어맞기만 한 채 다시 거리를 떠돌며 구걸을 하였다.
그러나 거지는 밥 한 톨 구하지 못하고 떠돌다가 어느 큰 상인의 집에 이르러 문을 두드리며 다시 구걸을 하였다.
“어르신, 며칠을 굶었습니다. 제발 찬밥 한 덩이만 적선하십시오.”
거지가 상인의 집 문을 두드리며 적선을 청하자 덩치가 산만 한 상인 집 하인이 부지깽이를 들고 나와 거지를 보자마자 두드려 패기 시작했다.
“이런 염치라곤 벼룩 낯짝만큼도 없는 녀석아! 지금 이 집에 사단이 났는데 여기 와서 구걸을 해? 오냐, 밥 달란 소리가 나오지 않을 만큼만 맞아봐라, 이놈아!”
하인은 거지가 살려달라며 매달려도 사정없이 거지를 두들겨 팼다.
“아무리 거지라지만 이 집 도련님이 뱀에 물려 사경을 헤매고 있어 모두가 시름에 잠겨 있는데 무슨 심보로 이 집에 와서 구걸을 하는 게야!”
하인은 지칠 때까지 거지를 흠씬 때리고는 쓰러진 거지를 내버려둔 채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거지는 너무 맞아 간신히 발걸음만 떼어놓을 수 있을 정도였다.
만신창이가 된 거지는 주린 배를 붙잡고 기듯이 걸어, 약초를 캐어 겨우 먹고사는 가난한 약초꾼 마을에 이르렀다. 그러나 거지는 한 가난한 약초꾼 집 앞에 쓰러져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제 괜찮으시오?”
거지가 겨우 정신을 차리자 병색이 완연한 노인이 거지를 보며 물었다.
“누가 이리도 모질게 때렸소? 온몸이 상처투성입디다. 내가 상처에 잘 듣는 약초를 발라두었으니 며칠 지나면 나을 거요.”
자상한 노인의 말에 거지는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댁도 딱한 사정이 있나보구랴. 우리도 흉년 때문에 하루 한 끼 겨우 풀죽으로 연명하며 살고 있다오. 과년한 딸이 있는데 너무 가난해 결혼도 못시키고 있으니…….”
병든 노인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 고였다.
거지가 노인에게 감사하단 말을 남기고 노인의 집을 나오는데 곱게 생긴 노인의 딸이 거지를 불러 세웠다.
“저, 이거라도 가지고 가 드셔요.”
노인의 딸은 약초 한 줌을 거지에게 내밀었다.
“이것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 이거라도 씹으시면 잠시 허기를 이길 수 있을 겁니다.”
거지는 처녀가 내민 약초를 받아들며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저희 집이 너무 가난해 돼지고기 반 근이면 낳을 수 있는 병을 고치지 못하고, 아버지께서 시름하시는 모습을 그저 보고 있는 형편입니다.”
노인의 딸이 눈물을 글썽이자 거지는 가슴이 저려왔지만 그들을 도울 아무런 방도도 가지지 못한 자신이었다.

거지는 힘없이 노인의 집에서 나와 먹을 것을 구할 요량으로 가까운 산으로 올라갔다.
그때 거지의 눈에 눈처럼 하얀 토끼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거지는 토끼를 잡으려고 후닥닥 뛰어갔지만 토끼는 도망가기는커녕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거지는 때를 놓치지 않고 날름 토끼를 잡아챘는데 토끼의 품에는 아직 눈도 못 뜬 열 마리의 새끼가 떨고 있었다.
“젠장, 오늘은 정말 운수가 사납군. 토끼 고기로 포식할 줄 알았는데 젖 먹이는 어미 토끼라니! 내 한 목숨 살자고 열한 목숨을 죽일 수 없지.”
거지는 잡았던 토끼를 조용히 제자리에 내려놓고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어미 토끼가 거지에게 말을 걸었다.
“저희 가족 목숨을 살려주신 은인께선 잠시 기다리세요.”
토끼가 말을 하자 거지는 깜짝 놀라 눈을 비비며 토끼를 돌아보았다.
“은인께 제가 작은 보답을 하려고 하니 제 말씀을 들으세요. 은인의 품에 있는 그 약초는 독사의 독을 해독하는 약초입니다. 그것을 잘 기억하시면 은인께선 세 목숨을 살리고 돈과 어여쁜 아내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말을 마친 토끼는 새끼들을 데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거지의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거지는 너무 놀라 한참을 제자리에 서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토끼가 한 말을 곰곰 되새겨보았다. 그러다가 무엇이 생각났는지 뛰듯이 산을 내려와 아까 자신에게 몰매를 퍼부었던 상인의 집을 찾아가 급히 문을 두드렸다.“여보시오, 여보시오! 문을 열어주시오.”
거지가 문을 두드리며 소란을 피우자 덩치가 산만 한 하인이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나와 거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 놈이 아직 덜 맞은 모양이구나! 그래, 내가 오늘 아주 단단히 손을 봐줄 테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내게 이 집 도련님을 살릴 약이 있소. 그러니 날 들여보내주시오.”
거지의 말에 하인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거지를 쳐다보았다.
“그 말이 정말이냐? 만약 거짓말이면 이 집에서 살아서 나갈 생각을 하지 말거라.”
하인은 거지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상인에게 거지의 말을 고했다. 거지는 집안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품안의 약초를 꺼내 그것을 상인 아들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러자 잠시 후 상인의 아들이 기력을 차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는 것이었다.
“아이고, 은인께서 우리 아들을 살려주셨으니, 은혜 백골난망이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은인께선 뭐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상인은 너무 기뻐 새까맣게 때가 덕지덕지한 거지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음……. 제가 급히 비단 천 필이 필요한데, 혹시 비단 천 필을 구할 수 있으신지요?”거지의 말에 상인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마침 외국으로 보낼 비단 천 필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은인께 기꺼이 그 비단 천 필을 드리겠습니다.”
거지는 상인에게 비단 천 필을 받아들고는 서둘러 아침나절 구걸을 하러 갔던 부잣집으로 향해서 비단 천 필을 건넸다.
“아이고, 이제 우리 아들은 살았소! 내가 며칠 동안 비단 천 필을 구하느라 온 나라를 다 뒤지고 다녔지만 구하지 못하여 애만 태웠는데 은인께서 이렇게 구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은인 덕에 내 아들 목숨을 구하였으니 내 은인께 후하게 비단 값을 치르리다!”
부자는 거지에게 비단 값으로 몇 곱절만큼의 황금을 주었고, 결국 한순간에 부자가 된 거지는 집과 논밭을 사서 자신에게 허기를 이기라고 약초를 준 처녀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

우리는 지금 넘쳐나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산다. 하지만 그 정보가 어디에 유용하게 사용되는 것인가를 구분 못하면 그 많은 정보들은 그저 한 푼 값어치 없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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