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마을에 같은 날에 태어나 같이 자란 두 친구가 있었다. 한 사람은 대지주의 아들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지주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인의 아들이었다.
그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서로 잠시도 떨어질 수 없는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그러나 두 친구는 우정은 돈독하였지만 경쟁에 있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라이벌이었다.
두 사람 모두 머리가 뛰어나 학창 시절 내내 같은 학교를 다니며 서로 번갈아가며 1,2등을 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대학 입학을 앞두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소작인의 아들은 장학금을 받고 한 지방 대학에 입학하였지만 또 다른 친구는 아버지의 입김으로 외국 유명 대학으로 유학을 가게 된 것이다.
헤어지기 전날 두 친구는 서로 최선을 다하여 같은 곳에서 일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뒤 유학을 다녀온 친구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몇 년 간 떨어져 있었던 두 친구는 술자리를 같이하며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난 유학 가있는 동안 마케팅과 광고를 공부했어. 그동안 선진국에서 배운 최신 광고 기법과 마케팅 기법을 국내에서 펼쳐 보일 생각이라네.”
유학을 다녀온 친구가 자신의 포부를 이야기하자 듣고 있던 다른 친구도 자신의 포부를 이야기하였다.
“나도 자네처럼 마케팅과 광고를 공부했다네. 나도 내가 배운 것들을 마음껏 펼쳐보고 싶어. 이번에 국내 최고의 광고 회사에서 신입 사원을 뽑는다는데, 우리 둘 다 그 회사에 들어가서 예전처럼 서로 경쟁하며 꿈을 펼쳐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친구의 제안에 유학을 다녀온 친구도 기쁜 마음으로 동의하였다.
두 친구는 같은 광고 회사에 입사 원서를 내고 둘 다 무난히 서류 전형에 합격한 뒤 1차 필기시험과 2차 적성 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였다. 그리고 두 친구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마지막 입사시험을 치르기 위하여 나란히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시험장은 넓은 방 안에 의자 몇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가슴팍에 수험번호를 단 몇 사람만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두 친구도 빈 의자에 앉아 마지막 입사 시험을 기다렸다.
그러나 시험은 곧 시작되지 않았고 시험이 빨리 시작되지 않자 수험생들은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지루하고 초조한 시간이 흐른 뒤 세 사람이 시험장으로 들어왔다.
시험장으로 들어온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나이든 중년의 사내였고, 한 사람은 아주 젊고 패션 감각이 뛰어난 여성이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젊고 잘생긴 남성이었다.
젊고 잘생긴 남성이 수험생들에게 <내가 바라는 미래의 광고 회사에 관하여 논하시오>라는 문제가 적힌 시험지를 나누어주고 주의 사항을 이야기했다.
“이 시험지에 여러분이 바라는 우리 회사의 미래 모습을 적어주십시오. 시험 시간은 한 시간이며, 다 쓰신 분은 회장님께 그 시험지를 제출하시면 됩니다.”
젊고 잘생긴 남성은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시험장 한쪽 구석에 마련되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두 친구는 다른 수험생들과 함께 자신이 바라는 미래의 광고 회사에 관하여 열심히 적어나갔다. 어느덧 시험 시간 한 시간이 가까워오자 답안지를 작성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일어나 세 사람 중 가운데에 앉아 있는 중년 사내에게 제출하였다.
유학을 다녀온 친구도 시험지에 빽빽하게 답안을 작성하여 중년의 사내에게 제출하였고 소작농의 아들도 수험생 중 제일 마지막으로 시험지를 제출하였다.
그런데 그는 중년 사내에게 시험지를 제출하지 않고 그 옆에 앉아 있는 젊은 여성에게 제출하였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수험생들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마지막 시험을 무사히 치른 두 친구는 나란히 시험장 밖으로 나와 시험결과를 기다렸다.
“그런데 자네는 왜 회장님께 시험지를 제출하지 않고 옆에 있는 여자에게 제출한 겐가?”유학을 다녀온 친구가 묻자 다른 친구는 빙그레 웃으며 반문하였다.
“자네는 회장님을 직접 보거나 아니면 회장 사진이라도 본 적이 있는가?”
그 물음에 유학을 다녀온 친구는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하였다.
“아니, 회장님 얼굴은 나도 모르네. 하지만 이처럼 큰 회사를 이끌 사람은 나이 지긋한 사람이 아니겠나? 그럼 자넨, 젊은 여자가 회장님이라고 생각한 겐가?”
비웃는 듯한 친구의 물음에 소작농의 아들은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나도 그 여자가 회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네. 하지만 광고란 젊고, 감각이 있어야 하고, 어떠한 고정관념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네. 그래서 필시 세 사람 중엔 회장이 없으리라고 생각했지. 회장님께 제출하란 말은 그러한 광고인의 기질을 가진 사람을 찾으란 말로 해석해서 난 젊고 감각이 뛰어나며 그리고 꼭 남성이 회장이 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여성에게 내 답안지를 제출한 것일세.”
과연 그 친구의 대답처럼 그 세 사람 속에 회장은 없었고, 그 친구가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그 회사에 입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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