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지만, 내가 한참 어릴 적 죽음에 대한 두려움 속에 지내던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중학교 2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름 방학 때면 옆집 친구와 아침 일직 시골 개천으로 나가서 어항에 떡밥을 붙인 다음 자갈이나 모래가 있는 물속에 어항을 놓은 후 민물고기인 피라미를 잡곤 했다.
기다리는 동안 친구와 감자와 옥수수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그 시절에는 최고의 행복이자 즐거움이었다. 고기를 잡은 후에는 초고추장에 찍어 싱싱한 회를 즉석요리로 해 먹거나 얼큰한 매운탕을 끓여 맛나게 먹었다. 지금 생각해도 입안에서 군침이 살살 도는 추억의 맛이다. 아무튼 시골 생활에서만 가능한 낭만이었다. 고기를 많이 잡은 날은 햇빛에 말린 후에 소금에 절여 밀가루 반죽을 입히고 튀김을 만들어 별미처럼 맛있게 먹기도 했다. 누구나 가난하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유달리 가난했던 청소년 시절 세 끼 식사 외에 간식이라는 것은 기대할 수도 없던 때라 생선 튀김은 별미 중에 별미였다.
그렇게 신나게 방학을 즐기고 개학을 하면, 얼마 있지 않아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상대로 기생충 검사를 실시했다. 그런데 나와 옆집 친구가 똑같이 간디스토마에 감염되었다는 검사결과를 통보받게 되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고 눈앞이 캄캄했다. 간디스토마에 걸리면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골에서는 치료할 병원 마땅치 않았고, 설령 병원이 있다 하더라도 치료비 때문에 수술은 엄두도 못 내는 형편이었다. 학교에 갈 때면 학용품 하나 사 가지고 가는 것도 힘들어 그냥 가는 날이 더 많았고, 소풍 때도 김밥을 못 싸 맨 밥을 먹어야 했던 시절, 병원 치료비를 기대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우리 집 형편을 번히 알고 있던 나는 부모님께 민물고기를 먹고 간디스토마에 걸렸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하루하루 불안과 초조, 염려와 근심의 나날을 보냈다. 캄캄한 밤이 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나를 짓눌렀다. 옆집 친구는 이미 몸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 병원을 찾아 갔고, 약을 먹으며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나에게는 심한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똑같이 민물고기를 먹고, 똑같은 병에 감염되었다는 통보를 받았으니 심리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그렇게 혼자 끙끙 앓고 며칠이 지났을까, 옆집 친구의 병세는 날로 악화되어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졌고 몸도 점점 말라갔다. 수업을 빠지는 횟수도 점점 늘어났다.
나는 친구보다 건강한 편이니깐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증상이 나타나려나 싶어 날마다 마음을 졸였다. 몸이 조금만 아파도, 이러다가 죽는 게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친구는 치료를 위해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올라갔고, 결국 학교생활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나에게는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 늦은 밤, 나의 신세를 한탄하며, 밤길을 걷다 교회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내 머릿속엔 이런 생각이 스쳤다.
‘신앙을 가져 볼까? 혹시 신앙을 갖게 되면 내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지 않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회 문을 살며시 열었다. 아무도 없는 교회 안은 고요했다. 십자가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 죽더라도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하나님, 살려 주세요!”였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도 모르면서 살려 달라고 애원하고 또 애원했다. 그때부터 방과 후에는 교회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예배당 안에 들어가 간절히 기도하곤 했다. 나를 살려 주시면 이제는 나를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나의 삶을 드리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간디스토마에 걸린 옆집 친구는 병약한 몸으로 10년을 넘게 고생하다가 결국 꽃도 제대로 피워 보지 못한 채 젊은 나이에 아깝게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살아서 이렇게 주님의 일을 하게 되었다. 지난날을 되돌아볼 때 감사할 일이 참 많다. 그러나 어린 시절 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내 인생에 대해 감사하지 못했고, 죽음의 공포 앞에 벌벌 떨기만 했다. 그래도 감사한 점은 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기독교 신앙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서운 병마와 싸우면서도 감사의 생활을 했던 많은 신앙의 선배들의 삶을 돌이켜보며, 고통 중에 있을 때 더욱 감사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진리를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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