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피해를 입은 환자가 피해보상 받기가 어려우면 권리를 포기하게 된다. 아프지 않은 사람도 권리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은 데 치명적 사고나 투병 중에 보상을 받아 내기란 쉽지 않다. 그것도 자신을 치료해준 의료인이나 병원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더욱 힘들다.

그래서 소비자피해를 입힌 기업들은 보상 전담창구를 설치하는 것이 도리이다. 물론 피해자는 기업 과실을 입증해야 보상받을 수 있다. 이러한 입증부담 때문에 많은 소비자들이 보상청구를 주저한다. 그런데 기업들이 보상창구마저 설치하지 않으면 피해자는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

피해자들은 자신이 얼마의 보상금을 요구하는 것이 적당한지 잘 모른다. 어떠한 보상방법이 있는지도 잘 모른다. 114 번호 안내에 전화해서 제조사의 피해보상 창구를 물으면 늘 콜센터 전화번호만 안내한다. 상품을 제조한 본사 전화번호를 알 수가 없다. 대부분의 회사가 114 안내에 본사 전화번호는 등재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빨리 포기하기를 바라듯이 본사 연락처를 알려 주는데 인색하다. 아웃소싱 하여 운영하는 콜센터(Call-Center)를 안내만 할 뿐이다. 콜센터로 전화하면 불편한 ARS가 기다리고 상담원 통화도 쉽지 않다. 어렵게 연결된 상담원은 대부분 보상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보상요청에 대해 공허한 답변만 돌아온다. 상급자나 본사 전화번호 또한 가르쳐 줄 수 없다고 한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는 병원도 피해보상을 위한 전담창구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입·퇴원 수속을 담당하는 원무과와 상담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무과 직원들은 늘 바쁘다. 병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근로자일 뿐이다. 의료인의 과실을 밝힐 전문성도 없지만 과실을 밝히려는 의지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보상을 요구할수록 피해자와 병원 직원 간에 마음의 상처만 깊어갈 뿐이다.

이제부터라도 공급자 위주의 콜센터 운영방식이 고쳐져야 한다. 기업 내에 소비자가 원하는 피해보상 창구를 설치해야 한다.

국가는 정부 내에 국민이 원하는 피해보상 창구를 설치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바로 그것이다. 행정서비스로 피해를 입은 국민을 위해 행정심판 절차도 마련해 놓고 있다. 국가는 행정심판 창구를 절대 아웃소싱 업체에 맡기지 않는다.

다행히 대기업을 중심으로 피해보상 전담창구 설치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기아자동차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얼마 전 공정거래위원회가 인증하는 소비자중심경영(CCM:Consumer Centered Management)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기업이 피해보상 전담창구를 설치하지 않는 것이 단기적으로 이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국민에게 권리를 포기하게 하는 나라나 소비자에게 권리를 포기하게 하는 기업은 결코 역사가 길지 못했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잊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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