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과거시험을 보러 집을 떠나 한양으로 올라오는 젊은 선비가 있었어. 몇 년 동안을 방 안에서 공부만 했던 이 선비는 집에서 일찌감치 출발했는데도 힘이 드는 거야.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고 했는데 그래도 생각만큼 많이 가질 못했어. 날이 어두워지려고 할 즈음에 나무 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게 됐어.
그런데 마침 그때였어. 마주 보이는 나무 위에서 까치들이 사정없이 울어대는 거야.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되어서 나무쪽으로 가보았더니 다름이 아니라 구렁이가 까치둥지로 올라간 거야. 그리고는 까치 새끼들을 넘보고 있는 거였어. 까치 어미는 자식들을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구렁이에 대응하지만 도저히 역부족인 거지. 구렁이가 보통 놈이어야 말이지. 사람도 구덩이에 감기면 그냥 죽음 아니겠어?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어. 살생유택이라고 옛날 화랑이 있던 시절부터 개미 새끼 하나라도 살아 숨쉬는 것은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말이 있어. 구렁이 녀석도 배가 고파 올라갔겠지. 하지만 선비도 자식이 있는 사람으로서 어미까치의 애절한 울음소리에는 가슴이 아프더라구.
옛날 선비들은 먼 길을 떠날 때 등 뒤에 활과 화살을 가지고 다녔거든. 선비는 결심한 거야. 약자를 보호하기로. 활을 들어 구렁이를 겨냥하는데 거의 까치 어미를 휘감기 직전인 거야. 만일 화살이 빗나가면 까치 어미의 생명은 물론이고 새끼까치들까지 위험한 순간이었어.
드디어 화살은 날아갔어. 하늘이 도왔는지, 본래 활쏘기 실력이 썩 좋지만은 않았던 선비의 화살은 그대로 구렁이의 목에 꽂힌 거야. 구렁이를 죽인 것은 좀 찜찜했지만 어찌됐든 까치를 살렸으니 선비는 또다시 길을 떠났지.
해는 어두워지고 밤길은 더욱더 고달프기만 했어. 큰 산을 넘을 때쯤에는 기력이 떨어져 더 이상 걷질 못하겠는 거야. 공부만 하던 선비들 다 그렇지 뭐. 차라리 농사일 하는 삼돌이한테 걸어가라고 하면 밤새 걸어도 끄떡없었을 것을.
여하튼 선비는 죽을 지경이었어. 그때 마침 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보였어. 정말이지 살았다 싶었지. 민가로 다가간 선비는 주인을 불렀어.
“주인장 계십니까?”
그러자 미모의 여인이 문을 열고 나온 거야.
“보아하니 과거시험 보러 가시는 선비님이신 것 같은데 지금 저희 서방님은 출타중이옵니다. 그런데 쓸만한 방이 한 칸 뿐이라서.”
선비도 막막한 거야. 여인네 혼자 있는 방에 들어갈 수도 없는 일이잖아.
그런데 이 여인네, 다시 입을 열었어.
“선비님, 괜찮으시다면 안 쓰는 방이 한 칸 있는데 그곳에서라도 주무시겠다면…….”
선비야 찬밥, 더운 반 가릴 때가 아니었거든. 앉아서라도 한숨만 잤으면 하는 심정이었어.
생각보다 방은 깨끗했고 여인네가 차려 준 저녁상을 받아 선비는 요기를 했지. 그리고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이 든 거야.
어,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이야. 목이 갑갑해짐을 느끼고 눈을 떴는데, 맙소사! 구렁이가 선비의 목을 감으려고 하는 순간이었어. 선비는 기겁을 하고 구렁이를 떼어 놓았어. 그러자 이 구렁이가 말을 하는 거야.
“당신은 나에겐 철천지 원수가 됐소.”
구렁이가 말을 하다니,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선비는 당황했어.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구렁이 말하기를,
“아까 산 아래서 당신이 활을 쏘아 죽인 구렁이는 바로 나의 남편이었소.”
그러니까 이 구렁이는 방을 내준 그 여인인 거야.
“아니 이럴 수가…….”
선비는 기겁을 했지. 그리고 혀를 낼름거리며 쳐다보는 구렁이 앞에서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었어.
‘이젠 죽음밖엔 없구나.’
이왕 죽을 거면 사내대장부로서 치사해지진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했지. 그래서 말했어.
“아무리 사람이 아닌 미물일지라도 어찌 어린 까치 새끼들을 죽이려고 했는지 참으로 고약하구만. 나도 자식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차마 모른 척할 수가 없었소.”
그러자 이 구렁이가, 그래도 양반이라고 목에 힘을 주고 말하는 선비를 그냥 죽이기는 싱거운 거야. 그래서 자기도 자존심을 걸고 선비에게 제의를 했지 뭐야.
“우리집 뒤편에는 절이 하나 있는데 그곳엔 스님이 없소. 만일 새벽이 되어서 종소리가 세 번 울리면 내 당신을 풀어 주겠소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당신이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구렁이 여인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지.‘너는 독 안에 든 쥐다. 처마에 매달린 종을 누가 쳐주겠는가?’
선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두려움과 막연함 속에서 밤을 새웠어. 구렁이 여인은 그래도 의리가 조금은 있었는지 자신이 한 말대로 새벽까지 선비를 노려보면서 있었던 거야. 그런데 이 선비님, 얼마나 피곤했는지 생명이 오가는 중대한 상황인데도 그만 꾸벅꾸벅 졸고 있었던 거야. 그러나 한순간에 눈을 뜨고 말았어.
땡 하고 종소리가 한번 울린 거야.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지. 아무도 없는 산 속의 절에서 종이 울리다니.
이때 구렁이가 하는 말이,
“종이 한 번 울렸다고 좋아하진 마시오. 바람이 불어서 어찌 다 울린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오.”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서 선비는 이제 죽을 시간이 다가왔구나 하고 생각했어. 어찌된 일일까? 종은 또다시 울렸어. 구렁이도 그제서야 심기가 불편한지 불쾌한 얼굴을 하게 됐지. 종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또 한번 울려 세 번을 울린 거야.

풀려난 선비는 정신없이 짐을 챙겨 소리가 난 뒤 편의 절로 달려갔어. 도대체 누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것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그런데 그때서야 선비는 알게 됐지. 종 밑의 땅바닥에는 까치 두 마리가 이마에 피를 흘린 죽어 있었던 거야. 그 까치들은 전날 구렁이에게 화를 입을 뻔했던 어미까치와 남편까치였지. 자신들의 새끼들을 살려 준 은인에게 다시 보답을 한 거야. 그야말로 살신성인인 셈이지.
요즘 사람들, 까치한테 많이 배워야 돼. 어떤 사람들은 제 자식도 못 키워서 버리질 않나, 이혼하면서 서로 안 맡으려고 실랑이하다 고아원으로 보내 버리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거든. 자식을 살려 준 은혜에 보답한 까치를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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