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와 매이는 올해로 결혼 10주년을 맞이했다. 하이는 매이에게 자축파티를 열자고 했다.“우리 두 사람이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잘 지냈다는 건 정말로 축하할만한 일이잖아.”
“그럼 우리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갖도록 해요. 아이는 외할머니댁에 맡기고.”
하이는 요 며칠 동안 매이에게 어떤 선물을 해야 좋을까하는 생각에 골몰해있었다.
‘목걸이는 어떨까? 매이는 목이 길고 피부가 하얀색이라 분명히 잘 어울릴 거야. 하지만 매이는 한 번도 목걸이를 갖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어. 그럼 반지는? 결혼할 때도 싸구려 반지 밖에 못 끼워줬는데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래도 지금은 생활도 많이 나아졌으니 비싼 반지를 선물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그래, 반지를 사자!’

 

결혼기념일 당일, 저녁 시간에 맞추어 두 사람은 근사한 식당에서 만났다.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하이는 무척 스마트해보였다. 매이도 오늘만큼은 특별히 화장을 하고 커피색 치마를 입고 올림머리를 했다. 하이는 새삼 매이의 눈가에 늘어난 주름을 발견했지만 그래도 자신에게는 그녀만큼 아름다운 여자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이가 먼저 매이에게 의자를 당겨준 뒤 두 사람 모두 자리에 앉았다. 매이가 하이의 얼굴에 난 상처를 발견하고 상처를 손으로 만지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하이는 매이의 손을 잡고 입가에 가져간 뒤 가볍게 키스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면도 하다가 조금 벤 거야.”
매이는 부끄러운 듯 잡힌 손을 빼려 했지만 하이가 꼭 잡고 놓지 않는 바람에 잠시 그대로 있었다. 하이는 곧 주머니에서 정성껏 고른 반지를 꺼내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그녀는 놀란 눈을 하며 하이를 쳐다보았다. 하이는 무척 흡족했다.
‘벌써 십년을 같이 살고도 어쩜 아직도 저렇게 소녀 같을까.’
매이는 반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감탄해마지 않았다.
‘이 사람은 여전히 날사랑하고 있어. 내가 이사람을 선택한 건 정말 잘 한 일이야.’
매이는 가방에서 선물상자를 꺼내어 하이에게 건네주었다. 그 안에는 최신형 핸드폰이 들어있었다. 하이가 줄곧 갖고 싶어 했지만 매이가 너무 비싸다고 나무랄까봐 참고 있었던 것이다. 집안 형편은 이미 넉넉해졌어도 매이는 언제나 검약한 생활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하이는 당장이라도 매이를 꼭 안아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두 사람은 낭만적이고 만족스러운 결혼기념일 10주년 밤을 보냈다.

5년 뒤 편집국장이 된 하이는 접대할 일이 많아져 집에 늦게 들어오거나 아예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아이도 이미 외지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매이는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일요일에도 하이는 집에 없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매이는 주말마다 지역사회 자원봉사에 참가하여 의탁할 곳이 없는 어린이와 노인을 보살피며 나름대로 충실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보다 일찍 봉사가 끝난 매이가 집 문을 연 순간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하이가 젊은 여자와 함께 외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충격으로 매이는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 뒤로 매이는 갈수록 허약해졌다. 미안하게 생각한 하이는 매이를 위한 수많은 명의를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이는 갈수록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말라가더니 결국은 죽을 날만 기다리는 지경이 되었다.
그녀는 미약한 음성으로 남편에게 장롱 안에서 나무상자를 꺼내 달라고 말했다. 언젠가 하이가 출장 다녀오는 길에 그녀에게 사다 준 것이었다. 매이는 줄곧 목에 걸고 있던 열쇠를 하이에게 건네주며 상자를 열어보라고 했다.
하이는 열쇠를 받아들었지만 웬일인지 손이 심하게 떨려 몇 번이고 열쇠구멍에 맞추지 못했다. 어쩐지 그 안에는 매우 충격적인 물건이 들어있을 것만 같았다.
겨우 열쇠를 돌려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연애 시절 하이가 매이에게 선물했던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매이는 하나하나 소중히 보관해두었던 것이다. 하이는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나하나 물건을 꺼낼 때마다 그와 관련된 소중한 추억들이 떠올랐다. 상자의 맨 밑바닥엔 얇은 노트 한 권이 깔려 있었다.
‘일기인가?’하이는 매이를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매우 피곤해 보이면서도 무척 편안해보였다.
첫 장을 넘기자 ‘사랑의 통장’이라는 큰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다음 장을 넘기는 하이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1985년 12월 18일, 우리는 드디어 결혼했다. 기념으로 우리 사랑의 통장에 1만 위안을 저축해놓자.
1986년 3월 8일, 하이에게서 스카프를 선물 받았다. 50 위안을 사랑의 저축을 하자.
1987년 2월 5일, 딸아이를 낳다가 난산을 했다. 수술실 밖에서 그가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아내를 살려주세요! 아이는 다시 낳으면 됩니다.”이번엔 500위안을 저축하자.
1989년 5월 1일, 하이가 휴가를 받아 여행을 가자고 했다/ 하지만 내가 돈을 낭비하게 될 테니 가지 말자고 해 그를 화나게 했다. 그러니 사랑의 통장에서 100 위안을 빼도록 하자.
.....중간 생략
1995년 12월 18일, 하이에게서 내가 정말 갖고 싶어 하던 반지를 선물 받았다. 그를 너무너무 사랑한다. 오늘은 1천 위안을 사랑의 통장에 저축하자.
1998년 11월 9일, 하이가 점점 바빠져서 우리 사이의 대화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다 오늘은 아이 문제로 다투기까지 했다. 결혼한 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니 1천 위안을 사랑의 통장에서 빼야 한다.
1999년 2월 5일, 하이가 또 술이 잔뜩 취해 집에 왔다. 내가 말 몇 마디 하기가 무섭게 그가 화를 냈다. 200 위안 빼자.
1999년 11월 23일, 한참동안 이 통장에 저축하지 못했다.
2000년 4월 1일,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 겨우 2,450 위안 남았는데 이젠 그것마저 모두 빼내야 한다. 이제 우리들의 사랑의 통장은 한 푼도 없는 빈털터리가 됐다.

하이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매이가 써놓은 사랑의 통장 금액이 가장 클 때는 13만 위안까지 올라갔었다. 13만 위안이라는 돈이 모두 통장에서 빠져 나가 결국 0원이 되었을 때 매이의 마음이 어땠을지 그는 상상이 갔다.
‘너무 늦어버렸어……. 아니야! 내 사랑으로 반드시 매이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어.’
하이는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매이를 쳐다보았다. 매이는 자고 있는 듯 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매이의 손을 쥐었을 때서야 그는 매이가 영원한 안식의 세계로 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매이에게 엎드려 자신의 잘못과 식어버린 사랑에 대하여 통곡했지만 매이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당신 아내의 사랑의 통장에는 얼마가 저축돼 있을까요. 절대로, 절대로 그녀의 통장이 마이너스 통장이 되게는 하지 마세요. 부부라도 언젠가는 헤어질 것이고 후회할 일을 남겨서는 안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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