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7일 월요일은 송라이터 바이올리니스트인 강드보라의 독주회가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발표되었던 날이었다.

독일 뮌헨 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Meisterklasse)를 마친 이후, 국내에서는 다양한 작곡과 연주, 후학을 양성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던 그녀가 이번에는 간만에 정통 클래식 바이올린 연주로 클래식 팬들을 즐겁게 해주었던 시간이었다.

'Refo500 Asia 2012" 국제 컨퍼런스 주제가, 영화 "한경직"의 예고편 및 삽입곡, SBS 일요특선다큐 "소리없는 세상 밖으로" 삽입곡 작곡, 스위스 Gart 매니지먼트 주관 서울바로크합주단 2015 미국 카네기홀 공연에서의 편곡 활동 등등. 국내에 귀국한 이후로는 바이올린의 연주만큼이나 작, 편곡의 활동에서 역량을 펼쳐 보였던 그녀에게 정통 클래식 곡의 해석이란 어떤 숙제였던 것일까?

이미 국내의 팬들에게 그녀는 줄타기, 독도와 같은 곡에서 한국적인 화려하고 흥겨운 연주나 섬세하고 유려한 곡으로, 한국적인 정서를 바이올린속에 마음껏 녹여내는 연주를 즐겨 선보였던 바 있었다. 하지만, 바이올린의 클래식 곡이라는 건 그것과는 다른 분야이다. 이미 2~300년 전에 살았던 유럽의 작곡가들이 가졌던 생각들과 당시의 문화,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어야만 음악속에서 그 정서를 담아내고 풀어낼 수 있는 것이리라. 클래식 연주가 단지 악보에 있는 그대로의 기교와 주법만을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고 해서 좋은 연주라고만 볼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어려움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악보에는 보이지 않는 정서와 작곡가의 감정이 실려 있는 부분이 반드시 있다. 그러기에 클래식의 악보에는 반드시 "Vivace ma non troppo(빠르고 생기가 흐르지만 그것이 과하지 않도록)"과 같은 빠르기 말이 적혀 있는 것이다. 메트로놈의 ♩= 120 과 같이 기계적인 표현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곡의 감정과 느낌이라는 건 항상 연주자가 무대위에 서기 전에 풀어야만 할 숙제와 같은 것이리라. 많은 연습을 통해서 기교와 주법은 숙련될 수 있는 것이지만, 단지 그것뿐이라면 인간의 위치를 로봇과 기계의 화음으로 이미 대체할 수 있는 것이 되었으리라.

그래서 바이올린 연주자의 애환을 다룬 '투게더'라는 영화에서는 중국인 학생이 바이올린을 배워 연주하는데 중국악기의 음색을 지울 수가 없어 포기하고 마는 모습이 보여진다. 문화적인 차이라고 하는 것은 쉽게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어린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서 외국에서 오랜 시간 수학한 연주자들은 유럽의 연주자들보다도 더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는 것을 볼 때, 그네들이 얼마나 클래식의 높은 벽과 씨름했을 지를 우리는 이해해야 할 것이다.

 

연주회의 프로그램 구성은 작곡가 세 명이었다.

프랑스의 18세기 작곡가인 르끌레르, 19세기 중반 독일의 브람스, 그리고 다시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포레.

클래식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빠름-느림-빠름의 순서로 진행되는 3 악장 구성의 곡들은 많이 들어보았으리라. 연주회의 프로그램 구성은 그것을 염두에 둔 것처럼 빠르고 경쾌한 분위기의 춤곡을 시작으로, 무겁고 장중한 브람스의 '비의 노래 소나타', 그리고 다시 포레의 행복했던 시절에 작곡했던 우아한 빠름으로 진행되었다.

J.M.Leclair의 'Sarabande and Tambourin'은 총 4악장으로, 당시의 프랑스 궁정에서 유행했던 춤곡들의 요소를 결합해서 보여주고 있다. 느림-빠름-느림-빠름의 기본 형식안에서 3박자 계열의 느리고 장중한 이탈리아 춤곡인 사라방드를 3악장에서, 빠르고 경쾌한 프랑스 춤곡인 탕부랭을 4악장에서 보여준다. 현란한 이중음 주법, 스타카토와 섬세하고 다이내믹한 활 쓰기를 요구하는 매우 쉽지 않은 곡을, 1악장의 맑고 투명한 고음으로 시작해서 빠르고 경쾌한 몸놀림으로 맺음지었다.

J.Brahms의 'Sonata No. 1 G Major'는 3악장에 붙여진 '비의 노래'라는 가곡을 테마로 해서 지어졌기에 '비의 노래 소나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첫번째 바이올린 소나타를 그는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호반 페르차하에서 썼다. 춥고 음울한 북쪽 독일과는 달리 따뜻한 이국의 정서는 그에게 밝고 명랑한 악상을 주었으리라. 그것이 1악장의 주제로 섬세하게 반복되는 듯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Vivace ma non troppo' 빠르고 경쾌한 것을 지나치지 않게 하라는 고삐를 그는 늦추지 않는다. 그래서 어쩐지 곡은 점점 처연해지고 우울해진다. 2악장으로 들어가면 결국 그 아름답고 우아한 선율이 장송행진곡의 피아노 박자와 만나 발을 맞추게 된다. 그의 스승이상의 스승이었던 슈만의 작고 소식을 접한 심정이 반영되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브람스의 소나타는 '남국의 이탈리아 호숫가를 걸으며 따듯하고 정겨운 느낌을 표현하려다가 슬픈 소식을 듣고 호숫가에 내리는 비, 너도 슬픈 것일까? 하는 3악장 비의 노래 테마가 느껴졌던 연주곡이었다. (개인적으로 필자에게 브람스는 늘 프랑스의 여류 소설가 '프랑수와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함께 클라라 슈만을 짝사랑했던 브람스의 우울함이 느껴져서 그 깊은 장중함속에 고뇌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G.Faure의 'Sonata No.1 A Major' 다시 4악장으로 돌아온 프랑스 작곡가의 곡은 그야말로 행복하고 거침이 없다는 느낌이었다. 31살의 나이로 인생의 한창 행복한 문이 열릴 예감으로 썼던, 작곡가의 대담함과 섬세함이 느껴지는 곡이었다. (포레는 이 즈음에 음악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취직했으니...) 포레의 곡들은 대체로 그 스승이었던 생상의 재기 발랄함을 물려 받았다는 느낌이 드는데, 빼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게을렀던 스승과는 달리 후학을 많이 양성하면서(그의 대표적인 제자로 라벨이 있다) 프랑스 클래식 음악의 중흥을 이끌었던 작곡가였다. 포레의 4악장 소나타는 맨 처음, 르끌레르의 곡과는 닮은 듯 닮지 않은 기풍을 보여주면서 3악장에 가서는 바이올린의 기교를 아낌없이 보여주었던 곡이었다.

그리고 앵콜, 두 곡. 첫 앵콜곡은 국내의 매스컴을 통해 한두번쯤을 들어보았을만한 곡, '몬티의 차르다시'의 선율이었고, 두번째 앵콜곡은 '영국 선원의 춤'이라는 영국의 민속곡으로, 흥겹고 경쾌한 춤곡풍의 곡을 느리게 연주하다가 점점 조금씩 빨라지는. 연주자의 기량을 즐겁게 볼 수 있었던 곡이었다.

바이올린으로 보여줄 수 있는 영역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악마의 악기라고 할 수 있을만큼, 악기마다 결코 쉽지 않는 초절기교를 요구하는 곡들이 범접할 수 없는 어려움을 뽐내고 있겠지만, 바이올린의 연주는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초절기교를 자랑했던 연주자가 유독 많았던 클래식 악기이다. 그 가운데에서 한 사람의 연주자로 우뚝 서기까지는, 바이올린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을 자기 안에서 발견하기까지 수없이 거듭된 훈련의 산물이었으리라.

바이올리니스트, 작, 편곡가, 음악 강사, 음악 감독으로까지의 영역을 넓혀 가고 있는 송라이터 바이올리니스트 강드보라의 행보가 앞으로 더더욱 주목되는 것은, 그러한 클래식 바이올린 연주의 영역을 한국에서 세계로 넓혀가고 있음에 마지않음이다.

송라이터 바이올리니스트 강드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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