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국회의사당에서 본 한 장면을 가끔 떠올립니다. 특히 이번 세월호 참사와 같은 긴박한 상황에서 사람들의 안전한 대피를 책임져야 할 선장과 같은 우리 사회 ‘지도자’의 지도자답지 않은 비겁한 모습을 볼 때면 더욱 그러합니다. 1965년 당시 서독 수도인 본(Bonn)에 위치한 독일 국회의사당(Bundestag)에서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나치 전범에게도‘소멸시효(消滅時效, Verjaehrung)’란 법적 보호 장치를 적용할 수 있는지를 놓고 열띠게 토론을 벌였습니다.

그 무렵 어느 날, 필자는 지인의 추천으로 의사당에 들어가 2층 방청석에 앉아서 의사일정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키가 훤칠한 한 의원이 뚜벅뚜벅 걸어서 의사당 맨 앞줄로 가서 정해진 자리에 앉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콘라트 아데나워(Konrad Adenauer, 1876~1967) 전 총리(1949~1963 재임)였습니다. 멀리서나마 당대의 역사적 인물을‘실제로’ 보니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지난 4월 16일 한반도 남단 해안에서 발생한 대형 선박 사고로 수많은 어린 학생과 승객 그리고 승무원들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귀여운 자식이나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유가족의 고통에 온 국민이 함께했습니다. 아울러 좀 더 빠르게 적절한 응급 구조 체계를 작동했더라면 희생자 수를 현저히 줄일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결국 분노로 이어졌습니다.

그 중심에는 선박 운영 총책임자인 선장과 일부 승무원이 본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먼저’ 탈출한 비겁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며 느낀 배신감이 있었습니다. 혹자는 한국전쟁에서 사망한 미군 장교 숫자와 국군의 숫자를 비교하면서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도 했습니다. 배가 가라앉는 가운데서도 자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구하려다 사망한 의인(義人)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묻혀버리면서 자괴감이 우리를 덮었습니다.

우리 사회 지도자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굳이 미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지 않다고 항변합니다. 성웅(聖雄)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이 노량해전에서 왜적의 총탄을 맞아 전사한 일은 오늘로 치면 해군 참모총장이 최전방에서 지휘하다 적이 쏜 총탄에 맞고 쓰러진 것입니다. 세계 해전사에서 총사령관이 충무공처럼 적군이 쏜 총탄에 희생될 정도로 최전선에서 진두지휘한 예가 없을 것입니다.

조금은 다른 얘기지만 조선시대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 선생은 조정에서 보낸 사약을 받을 때 한마디 변명도 없이 모든 예를 갖추고 당당한 모습으로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옵니다. 그리고 그렇게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인 선비가 하나둘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우리 역사에서 선비의 올곧은 자세와 정신은 빛을 발하며 전해오는 정신적 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슬 퍼런 선비 정신이 번득거립니다. 비겁한 모습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흔히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정신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하면서 우리 국회의사당에서 수시로 벌어지는 부끄러운 모습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 서방 국가의 국회의사당 중에서 독일이 우리의 국회의사당과 건축 구조상 가장 비슷하다고 합니다. 먼저 의사당 정면 한가운데에 자리한 독수리상과 우리네 무궁화상이 그렇고, 의장석을 중심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의석을 배열한 것이 유사합니다. 다만 독일 의사당은 대정부 질의를 할 때 총리와 각 부 장관이 의장석 오른편에 마련한 단상에 자리해 행정부와 입법부 대표가 마주 보며 앉습니다. 그런데 각 의원의 자리를 배열하는 데는 우리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독일은 원내대표나 당 원로들은 의장석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 즉 맨 앞줄 자리에 앉습니다. 초선 의원은 맨 뒷줄에 앉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는 그 반대입니다. 원로 의원일수록 맨 뒷자리에 앉습니다. “졸병은 앞에서 싸워!”라는 서글픈 구호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근대 미니멀 건축을 이끈 거성 미스 반데어로에(Mies Van Der Rohe, 1886~1969)가 남긴 “Less is more”와 “God is in the detail”은 많이 인용되는 글귀입니다. 예술에서 ‘쓸데없는 것은 과감하게 제거하라. 그러면 더 아름답게 된다’라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진수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서 정교한 끝마무리를 강조한 거성의 숨결이 전해옵니다. 그의 이름난 글귀로 알려진 “God is in the detail”은 의미가 같은 “악마는 정교함 속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를 원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필자는 “악마는 시스템 안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system)”라고 주장합니다. 특히 우리 국회의사당의 의석 배열 형태를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독일 국회의사당의 의석 배열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그 사회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공통된 정서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콘라트 아데나워 원로 의원이 노구를 이끌고 맨 앞줄에 있는 자기 자리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이 독일 국민에겐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의 의석 배열 시스템 안에 숨어 있는 ‘악마’를 새삼 생각하게 하는 요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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