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군 교수

코로나시대에도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언급한 ‘보이지 않는 손(THE INVISIBLE HAND)’의 개념은 지금까지도 경제학자들이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도구로 활용된다.

애덤 스미스는 시장이 움직이는 데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한다고 한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중국집의 주인은 고객에서 맛있는 자장면을 제공하고자 하는 서비스 마인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맛난 자장면을 판매하는 것이다. 떡집 주인도 고객에서 맛난 떡을 제공해야 한다는 서비스 마인드보다는 맛난 떡을 팔아서 이익"을 얻기 위함이라고 한다. 결국 시장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공급과 수요가 적절하게 매칭되면서 시장은 움직인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흔히 ‘보이지 않는 손’을 수요와 공급이 저절로 맞춰지는 현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 '개인의 사적 이익 추구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공익을 실현함'을 표현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손의 가설이 현대에는 어떻게 평가되고 있을까,

지금까지는 국부론 자체가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시발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250년이 흐르는 동안 수없이 많은 경제학적 주장과 실천이 있어왔지만 국부론 자체에 대한 이렇다 할 반박은 딱히 없었을 뿐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기초이론이라고 여겼던 국부론의 중요성이 다시 대두되는 형국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손은 인간의 경제적 활동에 대한 분석인 동시에 사적 이익추구에 대한 도덕적 정당성 부여로 인식될 수 있다. 따라서 현대에는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주장하거나 국가개입주의에 대한 반대를 위해 흔히 인용된다.

대체로 현대경제학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를 완전히 인정하는 편이다. 인정하는 가운데 때때로 사적이익추구가 공익을 해치기도 한다는 시장실패, 외부효과, 불완전한시장 등의 개념을 갖는 일부가 있을 뿐, 보이지 않는손 자체를 반박하는 유의미한 경제학자나 철학자는 없다.

노벨상 수상자인 Joseph E. Stiglitz가 "보이지 않는 손은 때때로 안보인다"고 시장실패를 표현했는데, 이 역시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반박이 아니라 완전하지는 않다는 투정에 불과하다.

지금 같은 고속 엘리베이터가 없던 시절, 어느 백화점에 엘리베이터가 너무 느리게 움직여서 고객의 불평이 많았다. 그래서 백화점 지배인은 이 문제 때문에 여러 방법을 궁리했다. 하지만 아무리 궁리해 봐도 가장 현실적인 해결 방법은 최신형 엘리베이터를 새로 설치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보는 순간 지배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유는 너무 비쌌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공사 기간 손님들이 불편을 겪으며 나타날 매출 하락을 생각하면 새로운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배인이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엘리베이터 담당 청소부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나섰다.

지배인은 속는 셈 친다는 생각으로 한 번 원하는 대로 해보라고 허락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정말로 고객들의 불평이 없어졌다. 청소부가 고안한 해결책은 엘리베이터 안에 큰 거울을 달아놓는 것이었다.

천천히 오르락내리락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두커니 서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고객들이 이제는 할 일이 생긴 것이다. 거울 앞에 서서 머리도 쓰다듬어보고, 음식물이 이빨 사이에 끼었는지 체크하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매를 보면서 시간 가는 줄 잊어버렸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손”의 경제학은 오늘날 “보이지 않는 손길”로 진화되고 있다.

따라서 이 또한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경제학의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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