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이 결렬의 길을 걷게 됐다.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금호산업이 HDC현산 측의 자금 부담을 1조원 이상 낮춰주는 등의 제안을 내밀었으나 HDC현산 측이 이를 거절하고 재실사 의지를 굽히지 않은 탓이다.

채권단 측이 HDC현산이 단지 약 2500억원의 계약금을 돌려받기 위한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시간을 끄는 것뿐이라고 판단, 곧 M&A 무산을 발표할 예정이다. 아시아나항공에는 기간산업안정지금을 투입해 필요자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매각 주체인 금호산업은 HDC현산의 최종 의사를 확인한 뒤 조만간 계약 해지를 통보할 예정이다.

채권단이 이미 거절한 재실사 카드를 HDC현산이 끝까지 주장한 것은 사실상 인수 계약 거절 의사를 밝힌 것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매각이 무산되면 채권단은 그간 준비했던 플랜B를 가동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엔 우선 2조원 규모의 기안기금이 투입된다.

매각 작업은 올해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빠르게 확산하며 어긋나기 시작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발판 삼아 '모빌리티 그룹'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던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이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지자 지난 4월 돌연 실사 작업을 중단했다.

이후 6월에는 인수 계약 당시와는 상황이 달라졌다며 인수 조건을 전면 재검토하자고 나섰다. 그러나 채권단은 협상을 지연시키려는 의도라고 판단해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매각 작업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계약 무산의 법적 책임은 HDC현산에 있다"는 이동걸 산은 회장의 압박성 발언에도 입장 변화는 없었다.

'노딜'(매각 무산) 위기가 커지자, 산은은 지난달 26일 HDC현산에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공동 투자하는 방안을 최종적으로 제시했다. 당초 인수가격 2조5000억원 중 일부를 채권단이 부담하는 방식이었다.

채권단이 애초 계약금보다 1조원가량 적은 금액으로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으로 알려졌으나, HDC현산은 재실사가 필요하다는 뜻을 끝내 굽히지 않았다.

이로써 채권단의 플랜B 가동도 본격화한다.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기안기금 지원으로 당장의 차입금 상환 압박을 막겠다는 것이다. 다만 기안기금 지원만으로 경영 정상화가 어려운 만큼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 관리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이 보유 중인 아시아나항공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 최대주주로 올라선 뒤 경영 정상화 과정을 거쳐 다시 매각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채권단은 지난해 4월 아시아나항공에 총 1조6000억원을 투입했는데, 이 중 5000억원으로 아시아나항공 영구채를 인수했다. 채권단은 올해도 3000억원의 영구채를 매입했다.

이를 전환하면 채권단의 아시아나항공 지분은 36.9%로 금호산업(30.7%)을 앞서게 된다. 아시아나항공이 채권단 관리를 받게 되면 노선 정리도 뒤따를 전망이다. 이 경우 에어부산과 에어서울에 동남아, 일본, 중국 등 노선을 떼어준 뒤 향후 분리매각을 추진할 수도 있다.

대규모 구조조정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당장 새로운 인수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 채권단 관리체제로 들어갈 가능성이 가장 큰데, 이 과정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며 "현재 노동시장 경직성을 고려했을 때 진통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재매각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허 교수는 "아시아나항공은 글로벌 대형항공사로서의 입지가 애매한 상황에서 저비용항공사의 맹렬한 추격을 받아야만 했다"며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이전과 같은 업황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기에 차별화된 생존 전략 마련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인수가액 10%에 달하는 2500억원의 이행보증금 반환 문제를 둘러싸고 금호산업과 HDC현산 간 소송전도 예상된다.

앞서 양측의 공방을 놓고 계약금 반환 소송 등에 대비한 명분 쌓기라는 시선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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