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사람들은 한국의 산야에서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한탄합니다. 젊은이들은 어른들의 그런 아쉬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미 새소리가 없는 산에 익숙하게 자랐기 때문입니다.

 제주도 ‘거문오름’ 분화구에는 지금 삼광조, 팔색조, 오색딱따구리를 비롯한 온갖 종류의 새들이 가을 숲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이들은 빨강색, 노란색, 까만색의 열매가 달린 나뭇가지 사이를 여기저기 날아다니느라고 분주합니다. 한국에서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요란스럽게 지저귀는 곳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왜 유홍준 명지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에서 ‘거문오름’을 탐방하고 난 소감을 영화 ‘녹색의 장원’ 배경과 같다고 표현했는지 공감하게 됩니다.

 며칠 전 지인과 함께 거문오름 분화구를 두어 시간 걸었습니다. 해발 456미터, 그러나 표고는 100미터 정도밖에 안 되어 바로 산과 인접한 선흘 마을에서 보면 뒷동산과 다를 바 없습니다. 비탈에 삼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억새로 뒤덮인 겉모습이 제주도 전역에 퍼져있는 360개의 오름 중 하나로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총면적 64만 평밖에 안 되는 이 거문오름이 제주도가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곳입니다.

 비행기가 제주 공항에 착륙하면 “승객 여러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제주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스튜어디스의 기내 방송이 나옵니다. 이 방송을 듣고 관광객들은 제주 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곳은 6천만 평으로 제주도 면적의 10분 1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공식 명칭은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세분하면 자연의 원형과 지질학 및 생물학적 보전가치의 완전성을 갖춘 세 곳, 즉 (1)해발 800미터 이상의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2)성산 일출봉 (3)거문오름과 용암동굴계입니다. 정부의 주무관청인 문화재청장으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신청과정에 참여했고 심사과정을 지켜봤던 유홍준 교수는 거문오름이 없었다면 심사위원들이 제주도로부터 눈을 돌렸을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한마디로 거문오름은 제주도 동북지역에 산재한 수많은 용암동굴의 모태라는 얘기입니다.

 아홉 개의 봉우리로 둘러싸인 거문오름 분화구로 내려서면 누구나 한번은 감탄사를 토해내게 됩니다. 서늘하고 촉촉한 기운이 몸을 감싸는 게 ‘녹색의 장원’에 발을 들여놓는 기분입니다.

 용암협곡이 마치 사람이 석축을 쌓다 그만둔 인공물처럼 수십만 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화산이 폭발할 때 공중에 치솟았다가 떨어진 수십 톤 무게의 화산탄도 여기저기 남아 있습니다. 용암동굴과 풍혈(風穴)이 곳곳에 있어서 여름에는 서늘한 바람을, 또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을 뿜어냅니다. 수십만 년 전 제주도가 팥죽 끓듯 화산활동을 하다 멈춰선 이후, 그 위에 숲이 형성되고 곤충과 조류와 짐승의 세계가 생겨난 그대로입니다. 이곳에 서면 제주도의 허파로 불리는 곶자왈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4년 전 처음 탐방했을 때보다는 신비감이 덜했지만 좁은 통로를 통해 분화구에서 바깥으로 나왔을 때 느끼는 감정은 변함없었습니다. 이상한 나라에 갔다가 돌아온 느낌, 또는 도원경(桃源境)을 들여다보다가 빠져나온 기분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될 때에 비해 거문오름 주변은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달라지고 있습니다. 오름 수백 미터 앞으로 왕복4차선 도로가 뚫리고 이 길을 따라 상업시설이 한창 들어서고 있습니다.

 거문오름의 소재지인 표선읍 선흘 2리는 더욱 변해가고 있습니다. 첫 탐방 때 마을(선흘리) 이장의 안내로 거문오름을 구경했습니다. 탐방객들은 마을회관 마당에 모였고, 그곳에서 이장의 안내로 억새밭이 이어진 들판 길을 걸어 분화구로 향했습니다. 걸어가는 과정으로 인해 더욱 야생의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운치 있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탐방로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제주도의 자연은 웅장하고 단단한 것이 아니라 아기자기하고 소규모이며 부서지기 쉽기 때문에 자연을 돋보이게 하고 보전하려면 인공구조물을 보전대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세우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를 거문오름 자락에 바짝 붙여 지어놓은 것이 왠지 눈에 거슬렸습니다. 센터와 함께 들어선 넓은 주차장, 광장, 전시장이 하나의 쇼핑몰을 연상하게 했습니다. 필연적으로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를 중심으로 상업시설이 모일 것입니다. 이미 주변에는 2층 콘크리트 식당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카페도 생겼습니다. 전국의 유명사찰 주변의 상업 지역 같은 미래의 모습이 연상되었습니다.

 시설물의 위치와 배치구조를 보면서 거문오름을 후손에게 물려줄 보전가치의 측면보다는 제주도를 자랑하는 도구로 또는 관광개발의 동력으로 활용하려는 정책기획자의 잠재심리가 자리 잡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4년 전 300명으로 탐방객 수를 엄격히 제한했다는 방침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4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미루어 짐작컨대 이곳을 보려는 관광객이 계속 늘어날 것 같고 탐방객 수를 늘리라는 관광업계의 압력을 받게 될 것입니다. 거문오름 탐방객의 숫자가 500명, 700명 1,000명으로 늘어날 것이 눈에 선히 보입니다.

 여성 해설사가 분화구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말합니다. “자연유산은 우리 세대 것이 아니라 후세의 것입니다. 거문오름의 주인은 여러분이 아니라 여기에 사는 동식물입니다. 나뭇잎 하나 파손해서는 안 됩니다. 탐방로에서는 물만 마시고 군것질도 하지 말고, 말도 도란도란 속삭이고 ‘야호’ 소리는 절대 내면 안 됩니다.”

 제주도의 자연은 지금 사람의 발길로 피로를 느끼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거문오름만이라도 그 고요함을 지켜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거문오름'의 지명에서 '거문'은 색깔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뜻하는 '검'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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