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기본법에서는 행정기관이 아닌 민간기관에 피해처리 업무를 위탁하여 처리하고 있다. 대기업들도 대부분 고객이 입은 피해 보상처리를 위하여 본사가 아닌 별도의 다른 회사에 보상처리 업무를 위탁하고 있다. 결국, 피해를 본 소비자들은 본사와 소통하는 대신에 보상처리를 위탁받은 제3의 회사를 찾아가서 상담하기 일쑤이다.

다시 말하면 소비자기본법상 소비자피해처리 의무가 있는 정부는 소비자 피해처리 업무를 직접 수행하지 아니하고 여러 민간기관에 위탁처리 하고 있으며, 계약당사자로서 피해를 보상할 의무가 있는 기업들도 보상처리 업무를 본사에서 직접 처리하는 사례는 드물고 별도의 다른 회사에 보상처리 업무를 위탁하여 처리하고 있다.

문제는 피해를 본 소비자들이 처음에는 이러한 위탁 시스템을 잘 모르고 신고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행정기관이 민간에 위탁하고 있다는 것과 기업이 피해처리 업무를 다른 회사에 위탁하고 있는 현실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신고 후에 기업이나 행정기관이 직접 처리하지 않고 위탁 처리되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소비자는 당황하고 실망하게 된다.

기업이 보상처리를 다른 회사에 맡기는 것은 본사 자신을 위한 것이지 소비자를 위한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행정기관이 피해처리 업무를 민간에게 맡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분명히 소비자를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만일 민간 위탁이 소비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국민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소비자피해 유형은 더욱 복잡하고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시장 상황도 급변하고 있으며 신종 상술과 첨단 제품도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고 있다. 따라서 소비자피해 구제를 민법 규정과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의존하여 처리하는 임의적 화해 처리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즉, 행정기관 상호 간의 역동적인 협력과 신속한 정책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 30년간 소비자 피해처리 업무를 민간기관에 위탁하고 있었던 것이 지금 상황에 맞는지 곰곰이 따져볼 때가 되었다. 물론 현행 민간 위탁처리 시스템으로 소비자 권리가 충실히 보장되고 소비생활이 쾌적해진다면 새삼스럽게 논의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소비자 누구도 현행 시스템에 대해 만족보다는 안타까움을 느끼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제 행정기관은 하루속히 피해처리 현장을 직접 들여다볼 시점이 되었다. 이를 통해 소비자와 기업 간 충돌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무슨 이유로 소비자피해의 신속한 보상이 어려운지, 기업이 무슨 이유로 보상처리 업무를 다른 회사에 위탁하고 있는 것인지, 과거 가습기 살균제 피해처리가 지연된 이유가 무엇인지 등을 직접 현장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현장을 모르면 탁상공론에 그칠 수밖에 없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진정 소비자를 위한다면 피해처리 업무를 직접 담당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피해처리 업무를 민간에게 위탁하는 것이 소비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지난 30년간 실험으로 충분하다. 이제부터라도 신속한 보상처리가 작동되는 쾌적한 시장을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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