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벤처기업부=사진
중소벤처기업부=사진

[컨슈머포스트=정진규 기자] 대기업의 고객은 모든 국민이다. 신용카드, 이동통신, 금융기관, 플랫폼 기업 등은 더욱 그렇다. 모든 대기업은 말만 꺼내면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나 고객을 위한 감동 경영을 외치고 있다. 즉, 첫째도 고객의 뜻이고 둘째도 고객의 뜻이라며, 고객의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고 한치도 고객의 뜻에 벗어나지 않도록 고객의 뜻을 잘 받들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고객이 느끼는 체감도는 다르다. 먼저 모든 대기업 임원과 직원은 고객과의 대화를 차단하고 있다. 우리나라 모든 고위공직자와 공무원들이 민원인과의 대화를 열어 놓고 있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즉, 모든 행정기관의 부서별 전화와 공무원별 전화는 국민을 향해 열려있다. 심지어 기초자치단체 의원들은 핸드폰 번호마저 공개하고 있다.

또한, 모든 중앙행정기관, 광역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 국회, 도의회, 구의회 등은 전화는 물론 민원인의 방문상담 시설도 개방하고 있다. 그런데 대기업은 언제부터인가 방문상담 시설이 폐쇄된 것도 부족하여 모든 임원과 직원, 부서별 전화번호를 차단시켰다. 고객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으며, 고객과 본사 임직원과의 소통체계를 폭파해 버린 상황이다.

이에 대해 대기업은 콜센터 전화번호를 운영하고 있으니 고객과의 대화를 거절한 것이 아니라고 항변할지 모른다. 행정기관도 120, 112, 119, 1372 등 수없이 많은 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긴급 센터와의 통화는 상장회사 또는 대기업 임직원이 고객과 직접 대화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기업이나 행정부의 콜센터는 대화를 지원하는 보완시스템에 불과한 것이다.

며칠 전 소비자 H씨는 신용카드 회사 콜센터에 전화를 했다. 대화 목적은 카드 수령 주소지를 변경하고 카드갱신에 대해 문의하려는 것이었다. 센터 전화에서는 ARS음성이 들려왔다. 고객의 통화수요가 많아 10분 이상 대기하라는 안내였다. 이어서 기다리는 통화 요금은 고객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무슨 황당하고 해괴한 일인가?

고객의 통화 수요가 많으면 콜센터 응답 요원 수를 늘려야지 어떻게 고객의 비용부담으로 10분 이상 대기하게 하는 것인가? 비용부담은 둘째치고 고객의 대기시간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고객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배려할 줄도 모르는 경영자가 어떻게 존경받는 기업가라고 할 수 있는가? 소비자 H씨는 이러한 의문이 뇌리를 스쳐 갔다고 했다.

소비자 H씨는 대기 전화를 끊고 다음 날 다시 걸어봤다고 했다. 또 10분 이상 대기해야 한다는 안내가 나왔다. 이번에는 끝까지 기다려 상담원과 통화를 마쳤다고 했다. 소비자 H씨는 연결되자마자 오히려 상담원을 위로했다고 했다. 사람 수가 부족해 휴식시간도 없을 것이므로, 여기서 전화 받는 상담원 모두 고된 노동으로 지친 것 같았다고 했다.

소비자 H씨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대기업이 무슨 이유로 고객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것인지, 무슨 배짱으로 방문상담실과 부서 전화번호를 폐쇄하고 영업하고 있는지, 민생을 챙긴다는 정부는 왜 이러한 상황을 방치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이제부터라도 고객과 소통하는 선진 기업 문화가 숨 쉬는 나라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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