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건서 노무사를 만나다

 

구건소 노무사

중학교를 그만두고 집을 나와 방황하던 시절, 그는 온갖 직업을 전전하며 세상의 밑바닥 생활을 경험했다.

옷가게 점원, 양말이나 덧버선을 파는 노점상, 야채행상, 과일장수, 포장마차, 엿장수, 고물장수, 공사판 일일잡부, 농장 목부 등 세상에는 생각보다 고된 일이 너무 많았고, 그에 대한 보상은 너무도 보잘것없었다.
하루살이 인생을 살면서도 청계천 헌책방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또 다른 꿈과 희망을 찾아낸 것이다. 중학교 중퇴의 학력을 가진 소년원 출신의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이, 택시 운전을 하는 틈틈이 독학으로 공부하여 노무사 시험에 합격한 후 20여 권의 노사관계와 노동법 전문 서적을 출간하고, 강의와 컨설팅을 통해 최고 전문가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쉰을 넘긴 나이에 검정고시와 독학사를 거쳐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예순을 바라보는 시점에 박사 과정에 입학한 학력을 보면 인생 역정 자체가 인생 역전이다.

앞으로 100권의 책을 집필할 꿈을 가지고 있다.

일간지인 한겨레신문에는 매주 상담 사례를 2년간 지속적으로 실어 단일 꼭지로는 꽤 긴 연재 기록을 가지고 있다.

“결혼하고 직업이 없이 빈둥거릴 때 쌀이 떨어져서 아내가 밥을 굶고, 그 때문에 갓난아이인 아들이 젖을 못먹을 때가 가장 힘들었을때”라고 회상하였다.

새로운 리더십 교육인 내비게이터십 프로그램을 만든 그가 직접 강의를 하는 강의장에서 환하게 맞아주는 그를 만나보았다.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변호사가 되려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인노무사가 되었고, 현재는 공인노무사로서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의 노무사로 활동 중이다.

노무법인을 설립하고,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 HR교육원 원장 등 다양한 사회 활동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보람 있는 일을 하면서 멋진 인생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최종 학력은 중학교 중퇴지만, 대학원에서 노동법과 인적자원관리에 대해 강의하고 객원교수로도 대접받는다. 공인노무사 시험의 출제위원으로서 저명한 교수들과 함께 2차 논문 시험 문제를 출제하고 채점에도 참가했다.

 

서울소년원에서 특강을 하고 있는 구건서 노무사

 

중학교 3학년 중퇴가 정규학력 전부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우리 가족은 뚝섬으로 이사했다. 뚝섬에 마련한 우리 집은 구석기 시대에나 볼 수 있을 법한 움집이었다. 전세나 월세를 얻을 돈이 없어 빈 공터를 1년 단위로 빌리고 사람 키 정도 되는 땅을 파 그 위에 비닐을 덮어 머물 곳을 만든 것이었다.

수돗물은 물론 전기도 없었다. 물은 하우스 옆에 펌프를 설치해 해결했고, 불은 일명 ‘호야’라고 하는 석유등을 밝혀 생활했다. 서울 하늘 아래 살지만, 시골보다 못한 생활이었다. 라디오나 TV 등 문화생활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간혹 동네 만화방에 가서 5원씩 주고 TV를 보는 것이 전부였다. 이러한 구석기 시대의 움집 생활은 내가 결혼해서 셋방을 얻을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부모님은 8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그러한 생활을 청산하실 수 있었다.

땅속 비닐하우스에서 벗어나는 데는 무려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삶을 바꾸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것이다. 1971년 중학교 3학년의 시기에 학교를 때려치웠으니 엄밀히 말해 이것이 내 정규 학력의 전부가 되고 말았다.

소년원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나는 왜 소년원 철조망 속에서 1년 넘게 자유를 잃고 감옥살이를 했을까?

그것은 내가 가출을 감행한 후 며칠 동안 굶다가 하도 배고파서 한 끼 밥을 먹기 위해 남의 핸드백을 훔쳤기 때문이었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 등장하는 장발장처럼 나도 핸드백에 든 돈으로 눈물 젖은 빵을 먹고, 그 죗값을 톡톡히 치른 것이다. 무려 1년이라는 세월을 철조망 속 소년원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내 인생에서 소년원은 많은 것을 잃어버린 곳이지만, 아이러니하게 더 많은 것을 배운 곳이기도 하다. 나약한 철부지 소년에서 배짱 있는 청년으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곳에서 경험한 혹독한 시련이 가슴속에 커다란 응어리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어떻게 꿈을 찾게 되었는가?

소년원 출신과 중학교 중퇴라는 낙인은 오랫동안 나에게 남았다. 특히 소년원에 갔었다는 것은 30년을 함께한 나의 사랑하는 아내에게도 얘기하지 못했고, 아들에게도 그러한 가슴 아픈 과거를 알리지 못했다. 얘기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차마 그런 얘기를 할 수 없었다.

수십 번, 수백 번 속으로 되뇌다가 겨우 겉으로 표현한 것이 ‘석세스 내비게이터십’이라는 책을 내면서 책 속에 간접적으로 토로했을 뿐이다. 얘기해야겠다고 아무리 다짐해도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중학교 중퇴라는 낮은 학력도 공인노무사 시험에 합격한 후에야 말할 수 있었으니, 내 인생의 연극 시나리오는 썼다가 찢어버린 공책처럼 군데군데 빈 공간이 넘쳐난다.

가난속에서 희망을 키우셨다. 가난에 대한 생각은?
가난은 나의 숙명이었고, 나와 한평생을 함께한 동반자이기도 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고, 공부를 못 했기에 좋은 직업을 가져보지 못했고, 좋은 직업이 없었기에 가난에 찌든 삶을 살아온 과거가 있다. 조물주는 인간이 극복할 만큼의 시련을 준다는 말이 있듯이 지긋지긋한 가난은 나를 강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온실 속 화초가 아닌 비바람을 맞으며 꼿꼿하게 견디는 잡초처럼 말이다. 그 지독한 가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가족과 친구 그리고 좋은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KBS 아침마당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5가지 중요한 덕목을 강조한다. 무엇인가?
나는 KBS <아침마당>의 목요특강에 출연하여 ‘꿈, 도전, 자존감, 긍정, 끈기’ 이 5가지 맥락으로 내가 인생을 역전시킨 과정을 풀어갔다. 역사적으로 인생에서 무언가 성취한 사람들은 대부분 큰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려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길을 택했다. 자신을 스스로 믿고 ‘자존감’을 지키며, 절대적인 ‘긍정’의 마음을 바탕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끈기’로 버텼다는 공통점이 있다.

행복하고 성취하는 인생살이는 세상이 주는 운과 내가 만들어 가는 운이 합쳐져야 가능하다. 아무리 운이 좋다고 하더라도 세상이 나에게 주는 운은 50%에 불과하고, 아무리 내가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만들 수 있는 운 역시 50%에 불과하다. 세상이 주는 50%의 운과 내가 만드는 50%의 운이 만나야 비로소 100%의 운이 만들어진다.

 

어려운 상황이 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인생이 있다. 격려의 말을 한다면?

살아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행복이다. 살아서 인생 무대에 계속 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무릇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소중하다. 특히 사람의 생명은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자살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자살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어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냥 살아내면 된다. 시련은 극복하라고 있고, 장애물은 넘으라고 있는 것이다. 그냥 살아가자. 이왕 살 거라면 즐거운 일을 찾아가자.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정신이 남다르다. 바뀌어야 할 속담이 있다고?
아버지는 내가 부질없는 꿈을 꾸고, 공부를 하고, 영어책을 읽고, 시험 준비를 할 때마다 주제 파악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라는 충고를 귀에 못이 박힐 만큼 하고 또 했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데 아무것도 없는 네가 뭘 하겠다는 거냐면서 포기의 미덕을 강조했다.

옛말 그른 말 하나 없다면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갈잎을 먹으면 죽는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는 직업에 귀천은 없으니 아무 일이나 해서 먹고살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끼니 걱정하면서도 책 사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으니 아버지로서는 당연한 충고였으리라.

하지만 나는 아버지처럼 평생을 가난에 찌들어 살기 싫어서 아버지가 한 말을 청개구리처럼 전부 반대로 뒤집어 봤다. 좋게 얘기하면 요즘 유행하는 ‘역발상의 전략’인 셈이다. 우선 ‘옛말 그른 말 하나 없다’는 것을 ‘옛말 틀린 말 많다’로 바꾸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중요하다. 어떤지?

가족은 인간관계의 시작이고 종착점이다. 사회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관계는 가족에서 출발한다. 개인-가족-조직-사회-국가-세계로 이어지는 네트워크(Network) 속에서 가족 관계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어느 집에나 걸려있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은 그저 액자 속 글귀만은 아닌 것이다.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첫걸음은 가족의 재발견이다. 가족은 함께 붙어서 지지고 볶을 때는 모른다. 그러나 물 같고 공기처럼 편안한 가족 중 누구 하나라도 없어지면 비로소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이 어찌할 수 없는 운명 공동체가 바로 가족이다. 서로에게 끊임없이 격려와 용기를 퍼부어 주고, 넘어지려는 가족 구성원이 있을 때 따뜻한 손길로 꼭 붙드는 일은 가정이 풍랑에 휩싸일 경우 의외로 큰 힘을 발휘한다. 힘들수록 가족이 희망이다.

 

 

 

인생의 변화는 만남을 통해 시작된다고 한다. 동의 하는가?
나도 공인노무사가 되고 나서 만난 좋은 사람들이 결국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한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중학교 중퇴 학력인 내가 쟁쟁한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에 있는 사람과 경쟁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게임이었다. 그러나 꾸준한 만남을 통해 나의 진심을 알게 된 노조간부, 인사담당자, 연구원, 기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두고 하나씩 사건과 자문회사를 소개해 주면서 공인노무사로서 내 위치를 구축할 수 있었다. 노동 운동을 하는 선후배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매스컴과 조직에 얼굴을 알릴 기회를 제공했다. 덕분에 TV 뉴스나 교양 프로그램, 신문 등에서 인터뷰하면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다. 나만의 다큐멘터리와 대담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영광도 있었다.

 

책 읽기와 공부에 대해서도 전문가이시다.

세상 모든 위대한 지도자들은 한결 같이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한다. 지금 하는 일에서 최고가 되려 한다면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 나는 책을 읽거나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책을 사고 책을 모으는 것이 참 좋다. 책장에 책이 가득 꽂혀 있는 그 자체로 기분이 좋아진다. 사 온 책 대부분은 읽어보지만, 어떤 때는 목차만 읽고 책장에 진열할 때도 있다. 솔직히 고백해 읽기 위한 책도 있지만, 폼 잡기 위한 책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책값으로 들어간 돈만 하더라도 집 한 채는 사고도 남을 정도이다. 내가 읽는 책은 인문학에서부터 자연공학까지 다양하다. 그중 최신 경영 흐름을 알 수 있는 경영 경제 서적을 가장 많이 본다. 물론 법학 관련 서적도 많이 읽는다. 최근에는 리더십과 사람, 인문학에 관한 책을 주로 읽었다. 내비게이터십이라는 새로운 리더십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읽은 책만도 200권이 넘는다. 앞으로는 동양철학과 고전을 중심으로 공부해서 한의사에 도전할 생각이다.

글쓰기와 책 집필이 많다. 얼마나 했는지?

청소년기 한때 소설가를 꿈꾸는 친구와 함께 소설에 심취하여 문고본이었지만 매일 소설책 1권씩을 읽어나간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은 나의 천직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글을 쓴 것은 노동법에 대한 실무적 해설서였고, 일간신문에 상담 사례를 연재하고 여러 권의 책을 내는 동안 차츰 시와 수필에도 관심을 두었다. 아직 시, 소설 등 순수문학에는 근접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시집과 수필집 그리고 소설집, 기행문집도 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1995년부터 월간지 《노동법률》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해 현재까지 계속하고 있으며, 기타 전문잡지에도 판례해설, 노사관계, 리더십, 인적자원관리에 관한 전문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일간지인 한겨레신문에는 매주 상담 사례를 2년간 지속적으로 실어 단일 꼭지로는 꽤 긴 연재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런 연재물이 바탕이 되어 매년 단행본을 발간했으며, 2012년 현재 22권의 전문 서적이 내 이름으로 세상에 탄생했다.

My Activity(행동)을 교육하실 때 강조하신다. 무엇인가?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 움직여라. 저질러라. 두드리면 열린다. 일단 해보라. 시간을 허비하지 마라.” 이다.

가족 소개를 해달라.

도전은 인생의 모든 것이다. 도전이 없는 인생은 앙꼬없는 찐빵과 같다.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이라고 했다. 도전하지 않는 사람에게 우연히 공짜로 주어지는 것은 거의 없다. 우공이산이라는 고사에서 보듯이 도전해서 당장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세월이 가고 시대가 지나가면서 그 도전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도전을 하고 기다리는 것과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기다리는 것은 결과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인생의 후반전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는가?

지금까지는 나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한 시기였다면 이제부터의 인생 3막은 사회와 함께 하는 시간으로 바꾸려고 한다. ‘스스로 함께 더크게 세계로’라는 이념을 갖고 있는 내비게이터십 프로그램을 확산시켜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성공을 이루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 또한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역량을 나누어주는 재능기부를 통해서 사회에 기여하고 더 나아가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고 싶다. 마지막 인생 4막은 어릴적 꿈인 소설과 시, 여행기를 쓰면서 인생을 정리하고 싶다.

기타 하고 싶은 말은?

인생은 자신이 스스로 항해를 하는 것이다.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인지 목적지를 정하고, 현재위치를 파악한 다음 경유지를 스스로 결정해서 꾸준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고 성공이다. 자신의 인생설계도를 반드시 그려보아야 한다. 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그 건물이 완성된 모습을 미리 알 수 있듯이 인생을 설계한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미리 내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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