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염순 이사장

나의 아버지는 목수셨다.
1960년대는 그런대로 목수가 괜찮았던 직업이었다. 아버지는 성실하게 일하셨고, 가족을 위해서 집도 장만하셨다. 성실하신 아버지와 부지런하신 어머니 덕분에 우리 가족은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궁색하지 않게 생활할 수가 있었다. 건강하시던 아버지는 일을 끝내시고 술을 한잔 하시고 오시는 날에는 사탕, 과자를 사갖고 오셔서 잠들어 있는 우리를 깨우시곤 했다. 우리가 사탕과 과자를 먹으면서 좋아하면 아버지는 흐뭇해하셨다. 때로는 유일한 18번이었던 <방랑 김삿갓>을 흥얼거리면서 흥겨워하셨다.
70년대 들어오면서 아버지의 일감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얼마 동안씩 집에 계시곤 했다. 일을 구하려고 여기저기 부탁도 하셨지만 일하시는 날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집에 계시는 날이 많아질수록 아버지의 주량은 늘기만 했다.
“아버지, 술 좀 줄여주세요. 건강이 걱정돼요.”
“내 건강은 내가 잘 안다…….”
건강하셨던 아버지께서는 건강에 자신이 있으셨다. 하지만 집에 계시는 날이 많아질수록 아버지의 주량은 늘기만 했다. 그러다가 다시 일하시게 되면, 아버지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고 건강해지셨다. 그렇지만 점점 더 집에 계시는 날이 많아지고, 늘어가는 주량과 더불어 아버지의 건강은 악화하기만 했다. 1년, 2년, 5년……. 건강이 나빠진 아버지는 이따금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술을 끊으세요”라고 말을 했다. 그렇지만 아버지께서는 술을 끊지 못하셨다. 술을 끊으실 수가 없었다. 일이 없으니 술이라도 드셔야 했던 것이다. 환갑을 넘기신 해의 어느 날, 아버지는 술을 이기지 못하시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술 한 병 대접 못 해 드리고 하늘나라로 보내드렸으니 말이다. 일만 있으셨다면 20년, 30년은 더 건강하게 사셨을 텐데……. 지금도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러면서 결심한다. 일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죽는 그 날까지 열심히 일하다 죽겠다.
때로는 하루 15시간 이상씩 일하다 보면 힘이 들 때가 있다. 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일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일하니 힘이 든다. 힘이 드니 힘이 들어오는 걸 느낀다. 살면서 점점 더 힘을 쓰는 재미, 일을 더 열심히 하면서 더 잘하게 되는 재미. 일을 통해서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인격을 수양하는 기쁨. 일을 통해서 남에게 도움을 주는 보람. 그 즐거움을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2013년 11월 동료들과 함께 설악산 대청봉을 등반하였다. 아침 일찍 출발해 백담사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봉정암을 향해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4시간 반 정도 걸려서 봉정함에 도착했다. 힘이 들었지만 힘이 들지가 않았다. 힘이 드는 가운데서도 힘이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경치도 좋고 동료도 좋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
봉정암에서 하루를 쉬고 다음 날 새벽 4시 반부터 대청봉을 향해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랜턴을 준비했지만 올라가는 길이 만만치는 않았다. 희미한 가운데 올라가기 시작했다. 바람이 몹시 불기 시작하고 추웠다. 올라가고 또 올라가고 대청봉에 도착하니 7시. 바람이 너무 불어서 사람이 날아갈 것 같았다. 해돋이를 보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백담사에 도착하니 12시가 넘었다.
몸은 치쳤지만 기분이 상쾌해지고 행복감이 밀려옴을 느꼈다. 만약에 직장에서 월급을 받기 위해서 1박 2일 동안 등반했다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아니!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고생시킬 수가 있을까! 이러다 몸이 상해서 쓰러지지……” 하며 불평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 등정은 내가 선택한 일이다. 그렇기에 몸은 힘들고 괴로워도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좋아서 내가 선택해서 했기 때문에 힘이 드는 일을 즐기면서 할 수가 있었다. 하고 나서도 정말로 뿌듯하고 행복했다. 또 가고 싶어진다.
내가 선택한 직장 일, 일을 즐기자 우리는 행복하고 의미있는 인생을 살게 된다.

 

저작권자 © 컨슈머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