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벤처기업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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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포스트=정진규 기자] 소비자 A씨는 얼마 전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 A/S센터에 방문했다가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난생 처음 방문한 대기업 A/S센터라서 입구에 있는 안내원에게 A/S센터 접수 방법을 물어봤다. 안내원은 사무적으로 키오스크 형태의 전자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접수신청을 하라고 했다. 접수 신청을 하니 이용할 창구의 번호가 표에 적혀 나왔다.

소비자 A씨는 이용할 창구 번호 앞에 앉아서 차례를 기다렸다. 그런데 센터 좌석 정면 벽면에 커다랗게 걸려 있는 현수막이 보였다. 그 내용은 A/S센터 직원은 관련법령에 의해서 보호되니 폭언이나 불편한 상황이 발생하면 법령에 의거 고발될 수 있다는 협박성 현수막이었다. 대기업의 소비자친화 경영수준이 이 정도라니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즉, 이 현수막을 걸어 놓은 대기업의 취지를 이해하자면 센터를 방문한 소비자들에게 품격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소비자 가운데는 품격은 둘째 치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거나, 불법행위조차 주저 없이 행하여 대기업 직원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극히 적을 뿐이며, 대부분의 소비자는 그렇지 않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소비자를 블랙컨슈머로 매도하며, 이러한 현수막을 업장에 크게 걸어 놓는 행위는 기업 스스로 품격을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굳이 자신의 근로자보호를 위해 현수막을 걸어 놓고 싶다면, 소비자 법령에 의거 보호되는 소비자8대 권리 보호를 위한 현수막도 함께 걸어 놓아 균형을 갖추었어야 품격을 지키는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기업과 행정기관의 안내 방송에 짜증이 폭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배경을 보면 정부는 고객응대근로자를 위해 기업에게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41조에서 사업주에게 근로자 보호를 위한 몇 가지 의무를 부여하였기 때문이다.

예컨대 동 시행규칙에서는 고객이 근로자에게 폭언 등을 하지 않도록 요청하는 문구 게시 또는 음성 안내, 고객과의 문제 상황 발생 시 대처방법 등을 포함하는 고객응대업무 매뉴얼 마련, 고객응대업무 매뉴얼의 내용 및 건강장해 예방 관련 교육 실시, 그 밖에 고객응대근로자의 건강장해 예방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 등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행정기관의 경우는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4조에서 민원 처리 담당자 보호 규정을 두고 몇 가지 보호조치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민원 처리 담당자의 신체적ㆍ정신적 피해 예방 및 치료 등을 위해 보호조치음성안내 등 안전장비 설치 및 안전요원 배치 등을 비롯하여, 휴대용 영상음성기록장비, 녹음전화 등의 운영이 가능토록 한 것이다.

문제는 폭언이나 폭행을 하는 소비자나 민원인이 극히 적은 가운데, 모든 소비자나 민원인이 블랙컨슈머나 악성민원인으로 매도되는 음성안내 방송을 들어야 한다는 데에 있다. 우리 문화수준이 굳이 이러한 방송을 해야 한다면 적어도 소비자나 민원인 권익 보호를 위한 방송도 함께 송출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짜증나지 않는 상담환경이 마련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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