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강원 강릉에서 발생한 티볼리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 현장. 강릉소방서 제공
지난 2022년 강원 강릉에서 발생한 티볼리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 현장. 강릉소방서 제공

[컨슈머포스트=조창용 기자]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자동차 급발진이 의심되는 사고가 발생해 KG모빌리티 티볼리 차량을 운전한 60대 여성 A씨가 크게 다치고, 차량에 타고 있던 이도현(사망 당시 12세)군이 사망했다. 경찰은 최근 이 사건 운전자인 A씨에 대해 ‘혐의없음’ 판단을 내렸다. 운전자인 A씨 등 유가족은 제조사의 책임을 묻겠다면서 7억6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통상 민사재판에서는 급발진을 인정받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BMW 급발진’ 사건에 이어 제조사 책임을 인정한 두 번째 민사소송 판결이 나올지 소비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는 28일은 지난 5월 첫 변론기일과 6월 감정기일을 진행한 데 이어 세 번째 재판 기일이다.

재판부는 원고 측이 신청한 사고기록장치(EDR) 감정과 음향분석 감정을 받아들여 사설 전문기관을 통해 지난 4개월간 정밀 감정을 진행했다.

EDR을 살핀 감정인은 충돌 5초 전 가속 페달을 최대로 작동시켰다면, 변속장치에 손상이 없었음이 확인되었기에 시속 136㎞가 넘었을 것이라는 최종 분석을 내놨다.

차량 제동장치에서 제동 불능을 유발할만한 기계적 결함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차량 운전자가 제동 페달이 아닌 가속 페달을 밟아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국과수 분석과 상반되는 결과다.

또 처음 급가속 현상이 나타나면서 모닝 승용차를 추돌했을 당시를 두고 국과수는 운전자가 변속레버를 굉음 발생 직전 주행(D)에서 중립(N)으로 추돌 직전엔 중립에서 주행으로 조작했다고 결론 내렸지만, 음향분석 감정인은 변속레버를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점을 들어 '변속레버 조작은 없었다'고 분석했다.

감정 결과만 놓고 보면 줄곧 EDR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변속레버를 조작하지 않았다는 원고 측의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또 이번 감정 결과들을 통해 모닝 승용차 추돌 전 '전방 추돌 경고음'이 7차례나 울렸음에도 '자동 긴급 제동장치(AEB)'가 작동하지 않은 사실이 결함에 해당하는지 판단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자동 긴급 제동장치가 작동했었다면 차량이 정지해 사망사고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을 개연성이 커 급발진 인정 여부와 함께 이번 재판의 중요한 쟁점이다.

책임 소재를 가릴 핵심 감정이 모두 끝나면서 이르면 내년 2월 법관 정기인사 전 1심 선고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급발진 사건에 있어 형사재판과 민사재판 판단이 상이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급발진을 입증하는 ‘주체’와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형사재판은 ‘검사’가 피고인이 주의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민사재판은 ‘급발진으로 주장하는 사람이’ 급발진으로 사고가 났을 ‘개연성’을 입증해야 한다. 이때 개연성은 가능성보다 인과관계가 명확한 개념이다. 형사재판과 비교하면 차량 결함으로 급발진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더욱 명확하게 증명해야 하는 데다 이를 일반 소비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점에서 증거 수집에 한계를 겪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5년간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리콜센터에 접수된 자동차 급발진 의심 신고 151건 중 급발진이 인정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이에 급발진 입증 책임을 소비자가 아닌 제조사로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경일 교통전문 변호사는 “운전자와 차량 제조사 모두 급발진을 입증하긴 쉽지 않다”며 “결국 운전자와 제조사 중 누가 급발진의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지의 문제인데, 제조사가 가져가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그는 “운전자는 (급발진이 인정되지 않으면) 형사처벌까지 받고 인생이 파탄나는데, 제조사는 (급발진이 인정돼도) 여러 가지 물건 중 하나의 불량품을 잃게 될 뿐이고 이런 위험을 비용에 반영해 차량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한편, 최근 5년간 전기·하이브리드 차량의 급발진 의심 신고가 차량등록수 대비 큰 비중을 차지하자, 전기차를 향한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최근 전기차 화재 발생 수까지 매년 증가하면서 소비들자들이 안전 문제를 이유로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모습이다.

허영 의원이 한국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최근까지 급발진 의심 사고 787건이 발생했다. 올해는 9월까지 21건을 기록해 작년 15건을 이미 넘어섰다.

해당 통계를 차량 사용연료별로 살펴보면 최근 3년 동안은 전기차의 비중이 상당히 늘어났음이 포착된다. 소수 차종이던 전기차가 2021년부터는 경유차, 휘발유차와 각각 비등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9월 기준 승용차 등록대수가 2129만대이며, 그중 전기차는 41만 대로 2%도 되지 못하는 실정임을 고려하면 전기차 보급 확산 추세에 따라 급발진 의심사고 문제 역시 더욱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을 수 있다.

지난 2021년 1월 23일 오후 4시 11분께 대구시 달서구 한 택시회사 앞 전기차 급속충전소에서 발생한 현대차 코나 전기차 화재 사고. [사진=대구 달서소방서 제공]
지난 2021년 1월 23일 오후 4시 11분께 대구시 달서구 한 택시회사 앞 전기차 급속충전소에서 발생한 현대차 코나 전기차 화재 사고. [사진=대구 달서소방서 제공]

또한 현대차 등 전기차 보급 확대로 전기차 운행이 증가하면서, 화재 사고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최근 소방청 자료를 보면 지난 2020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전기차 화재 발생 건수는 총 121건이다. 

화재 건수는 매년 약 2배씩 증가했다. 년도 별로 △2020년 11건(인명피해 0건) △2021년 24건(인명피해 1명) △지난해 44건(인명피해 4명) △올 6월까지 42건(인명피해 6명)이 발생했다. 

화재 발생 요인별로는 총 121건 가운데  △알 수 없음 37건 △전기 29건 △부주의 22건 △교통사고 16건 순이다. 장소별로는 일반도로가 47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주차장 46건, 고속도로 12건, 기타도로 7건 순으로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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