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재산과 엄청난 권력을 가진 한 귀족이 있었다. 그 집안은 대대로 손이 귀한 집안이어서 아직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그런데 신의 가호가 있었던지 그 귀족이 나이 쉰을 훨씬 넘겼을 즈음 귀중한 아들을 얻을 수 있었다. 어렵게 얻은 아들이어서 귀족은 어린 아들을 울타리 안에 두고 불면 날세라 쥐면 꺼질세라 애지중지하며, 정말 곱고 귀하게 키웠다. 아들이 원하는 물건은 무엇이든 사주었고,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었다. 아들은 사랑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사리 판단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자신을 지켜주던 울타리에서 조금씩 조금씩 멀리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소작농들에게서 세금을 걷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귀족은 자신의 귀한 아들이 하인의 자식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았다. 귀족은 너무 놀라 타고 있던 마차에서 얼른 내려 아들에게 달려갔다.
“아들아, 아들아! 내 사랑스럽고도 소중한 아들아! 넌 어찌하여 천하고도 불결한 아랫것들의 자식과 함께 어울리느냐? 아랫것들은 어리석고 불결하여 네가 가까이 해서는 안 될 것들이란다.”귀족은 정색을 하며 아들을 나무라고는 서둘러 아들을 데리고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하인들을 불러 만약 자신의 아들과 어울리는 녀석이 있으면 큰 봉변을 당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 후 귀족의 귀한 아들은 그 어떤 하인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귀족이 세금을 걷어 집으로 돌아오는데 자신의 저택에서 조금 떨어진 한 농가에서 자신의 귀한 아들이 소작농의 아이들과 어울려 탈곡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귀족은 너무 놀라 한걸음에 달려가 아들을 타일렀다.
“아들아, 내 목숨보다 더 귀한 아들아! 넌 어찌 빌붙어 땅이나 파먹는 무능한 것들과 어울려 그토록 천한 일을 하더냐? 네가 그들과 어울리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란다.”그리고는 급히 아들을 데리고 대저택으로 돌아와서는 소작농들을 불러 전에 하인들에게 하였던 것과 똑같은 으름장을 놓았다.
그 후 귀족의 아들은 자기 또래의 아이들 누구와도 어울릴 수 없게 되었다. 이 때문에 귀족의 아들은 항상 혼자 외롭게 지냈다. 그 모습을 본 동네의 늙은 이발사는 귀족 아들이 측은하여 그와 말동무가 되어 세상의 재미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어느 날 귀족은 귀한 아들과 늙은 이발사가 처마 밑에 앉아 다정히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았다. 귀족은 그 모습을 보고 너무 화가 나 냉큼 그리고 다가가 화를 내며 말했다.
“아들아, 아들아, 세상의 그 무엇보다 더 귀한 내 아들아! 내가 천한 것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누누이 일렀거늘 어찌 이 아비 말은 안 듣고 저 늙은 이발장이와 어울리느냐?”아들을 엄하게 꾸짖고 난 귀족은 쥐고 있던 말채찍을 들어 늙은 이발사를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하였다. 아들은 울며 아버지를 말렸지만 그럴수록 귀족은 늙은 이발사를 향해 채찍을 더 힘껏 휘둘렀다. 그 일이 있은 후 귀족의 아들은 벌로 자기 방에 갇혀 지내야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 귀족은 자신이 아들에게 너무 심했다 싶어 아들을 위해 잔치를 준비하였다. 호사스런 옷을 새로 지어 아들에게 주었고, 백여 명이 먹어도 남을 정도의 산해진미를 큰 탁자 위에 가득 차렸다. 귀족은 친분이 있는 다른 귀족들을 불러 그들과 함께 잔칫상 앞에 앉아 아들을 불렀다. 그러나 그 자리에 나온 아들의 모습에 다른 귀족들과 아버지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아들아, 내 소중한 아들아! 귀한 손님이 많은 이 자리에 네 꼴이 무엇이더냐? 네 옷은 어디 두고 벌거벗었으며 네 눈은 왜 그렇게 가렸더냐!”
귀족이 화난 목소리로 아들을 크게 꾸짖자 아들은 태연하게 대답하였다.
“아버지, 나의 소중한 아버지시여! 전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런 모습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하인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하셨기에 전 그들이 지어준 비단 옷을 입을 수 없었고 소작인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하셨기에 그들이 땀 흘려 키운 귀한 음식을 먹을 수 없었으며 지혜를 나누어준 이발사와 어울리지 못하였기에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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