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은 죽도록 사랑했지만 여자측 부모의 반대로 결혼을 하지 못하는 남녀가 있었다. 여자는 어떻게든 승낙을 얻어내려고 노력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부모의 태도는 완강해져 아예 만나지도 못하게 집에다 가둬 놓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한 여자는, 20여 년을 넘게 키워 준 부모를 배신하고 집을 나와 사랑하는 남자와 산중(山中) 사찰에 가서 하객도 없는 쓸쓸한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었다.
이들은 남들처럼 화려한 축복 속에서 새 출발을 하지는 못했지만 사랑만큼은 어느 부부 못지않게 애틋했다. 이러한 사실은 주위 사람들을 통하여 친정 부모의 귀에 들어갔고, 1년 후 이들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도 친정 부모의 귀에 들어갔다. 그러자 결혼을 완강히 반대했던 친정 부모는 이들의 결혼을 뒤늦게서야 받아들였다.
지척에 두고도 가지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하는 이산가족처럼 살아왔던 아픈 시간은, 봄날에 얼음 녹듯 친정 부모의 마음이 녹아내리면서 막을 내리고, 이제 이들 가정은 아주 화기애애해졌다. 어렵게 태어난 딸 아이 또한 아무 탈 없이 성장하여 눈물겹게 출발한 인생치고는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하기만 했다.
딸아이의 자는 모습을 행복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던 남편에게 부인이 물었다.
“슬기(딸)가 자라서 우리처럼 우리가 반대하는 남자 만나서 따라간다고 하면 자기는 어떻게 할거야?”그러자 남편은 주저없이 대답했다.
“그 놈을 그냥 둬.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 놓고 말지.”
부모의 반대로 남다른 고통을 겪고 결혼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남편이 이해할 것이라고 믿고 물어보았지만, 남편의 뜻밖의 대답에 부인은 기가 막혀 따지듯 말했다.
“자기는 친정 부모로부터 결혼 승낙을 받지 못해서 그렇게 애를 태웠으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대답할 수가 있어?”그러자 남편은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응, 그때는 장인 장모를 많이 원망했었는데, 막상 슬기를 낳아 보니 그분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고, 아마 나도 그분들의 입장이었으면 그렇게 했을 것 같아.”
 

어째 타인이 내 입장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랴. 나 역시 타인의 입장이 되어 보면 이해하지 못할 일인 것을! 남의 일이라고 해서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지 않는 한 그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어느 누구도 당사자의 입장에 몰려 보지 않고서는 그 심정을 헤아려 줄 수 없다. 어떻게 이빨이 아파 보지 않은 사람이 이빨이 아픈 사람의 심정(고통)을 이해할 것이며, 어떻게 딸을 키워 보지 않은 사람이 딸 가진 부모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상대방의 심정을 대충 헤아려서는 안 된다. 단지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심정을 추측해서는 안 된다. 대충 추측하기 때문에 타인이 하는 섹스는 불륜이고 자신이 하는 섹스는 로맨스라고 하는 모순을 범하게 되고, 결혼에서 순결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신부감은 반드시 순결해야 된다는 모순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일이 닥치면 진실로 입장을 바꿔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행동하기보다 “내가 그 입장이었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하고 상대방의 입장으로 돌아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당사자의 입장을 100% 헤아려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은 되고 타인은 되지 않는다고 하거나 자신은 면죄하면서 타인에게는 벌을 주는 모순을 범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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