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내전 당시 나는 국제여단의 일원으로 참전하던 중 불행히도 적군의 포로가 되어 감옥에 갇혔다.
적군의 경멸과 열악한 대우 속에서 나는 마치 곧 재단에 바쳐질 어린 양 같은 처지에 빠졌다. 한 간수가 내일 나를 총살하기로 했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극도의 공포감이 엄습해왔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웃옷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려고 했다. 이미 온 몸을 수색당한 후였지만 놀랍게도 쭈그러질 대로 쭈그러진 담배 한 가치가 남아있었다. 손이 심하게 떨리는 바람에 나는 간신히 담배를 입에 가져갈 수 있었다. 그런 뒤에 나는 또 다시 무의식중에 성냥을 찾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으나 이미 압수당한 뒤였다.
그때 감방의 철창 너머로 우뚝 서 있는 사병이 보였다. 그는 나를 보지 못했다. 아니 보지 않았다. 아무런 가치도 없고 내일이면 곧 혐오스러운 시체로 변할 나를 그가 쳐다 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나는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성냥을 빌릴 수 있을까요?”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더니 잠시 눈을 감고 긴 한숨을 쉬었다. 그런 후 아주 천천히 철창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성냥을 꺼내어 불을 붙인 뒤 내게 내밀었다.
바로 그 찰나 미약한 성냥불 아래에서 그와 나의 두 눈이 마주쳤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때 내가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두 사람이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낯선 사람이 얼굴을 마주보게 되면 대부분 미소가 지어지게 마련이니까. 어쨌든 나는 그를 향해 웃었다.
나는 나의 미소가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리라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다. 적에게 호감이 있을 리는 만무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의 미소는 놀랍게도 두 사람의 영혼의 불씨에 불을 댕기는 효과를 낳았다. 그는 약 몇 초 동안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곧 양 입 끝이 천천히 올라갔다. 담배에 불을 붙여준 후 그는 여전히 나와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계속해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나는 그가 한 사람의 사병이나 한 사람의 적군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그 역시 나를 다른 시각으로 보는 듯했다. 그는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아이가 있소?”
“있어요, 여기요, 여기 있어요!”
나는 여전히 떨리고 있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가족사진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그 역시 재빨리 자신의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밖에 나와 있은 지 벌써 1년 넘었소, 애가 보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오. 아마 몇 개월 더 버텨야 겨우 집에 한번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소!”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래도 당신은 행운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무사히 집에 갈 때까지 지켜주시길 빌게요. 하지만 전 이제 다시는 가족을 만날 수 없게 되었어요. 이제 다시는 아이에게 키스를 해줄 수도…….” 나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고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그의 눈에도 동정이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때 갑자기 그의 눈이 빛나는가 싶더니 검지를 입에 대고 내게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사방을 둘러본 뒤 발끝으로 살금살금 다가와 감방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잔뜩 긴장해서 그를 따라 벽에 바싹 붙어 감옥의 뒷문을 통해 성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런 뒤에 그는 아무 말 없이 뒤 돌아서서 성 안으로 사라졌다. 한 번의 미소로 나는 생명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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