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이 동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맨손으로 사업을 시작하여 지금은 작은 빌딩을 임대하는 등 자타가 공인하는 성공한 사업가들이 되었다. 두 사람 모두 사업에만 열중했고 경험은 없었지만 매우 부지런하고 성실했기 때문에 사업은 계속해서 발전해 나갔다.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은 자신들이 매우 성공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동업을 증명할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 그들이 건강한 동안은 상관없겠지만 자식 대에 가서 문제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여기고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계약서를 작성하자 둘 사이에는 매사에 의견 충돌이 생겼다. 아니 계약서를 작성할 때부터 의견 충돌이 있었다. ‘너는 공장을 맡고 나는 본사를 맡겠다.’와 같은 작은 문제까지 구분하려 했고, 서로가 더 유리한 조건을 차지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나를 찾아왔다. 이 문제는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로서도 간단하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한 사람은 생산을 맡았고 다른 한 사람은 영업을 맡았기 때문에 ‘내가 상품을 잘 만들었기 때문에 회사가 번창했다.’든가 ‘내가 상품을 잘 팔았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라고 서로 다투고 있었다. 확실한 충고를 할 자신은 없었지만 나는 두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두 분이 서로 다투기 전까지는 사업이 매우 잘 되어갔습니다. 그런데 두 분의 의견 충돌 때문에 이제까지 애써서 일으켜 놓은 사업을 망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는 도저히 사업이 원만하게 경영해 나갈 것 같지 않으니,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탈무드>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찾아냈다.
한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아이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생명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커감에 따라서 그에게 생명을 주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난다. 그것은 그를 가르치는 스승이다.

나는 그 두 사람에게 물었다.
“두 분 중 회사 경영자는 누구십니까?”
그러자 그들은 서로 자신들 두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러면 하나님도 그 경영에 참여시키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일에 관여하고 계십니다. 서로 자기가 잘했다고 주장하지만 말고, 세상의 모든 일을 맡고 계신 하나님을 여러분의 경영자 중에 참여하시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는 두 사람이 대표자였기 때문에 그 회사에는 사장이 없었고 두 사람은 서로 사장이 되려고 다투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충고해 주었다.
“이 회사는 물론 여러분의 회사이지만 또한 하나님의 회사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유대인을 위해서 일하고 있고, 이 나라를 위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회사가 여러분의 소유라는 생각을 지나치게 하지 말고 하나의 큰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누가 사장이냐 하는 문제는 아주 보잘 것 없는 일로 여겨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생산을 맡은 분은 열심히 공장을 경영하고 영업을 맡은 분은 열심히 상품을 팔게 될 것입니다.”이때부터 그들의 회사는 잘 운영되어 갔다. 이익금의 몇 퍼센트는 하나님을 위해 쓴다고 생각하고 자선단체에 내놓기도 하고, 그것을 하나의 목표로 삼아 일했으므로 회사의 사장을 따로 정하지 않고서도 이익금은 점점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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